그날 밤 대한민국은 ‘경악’ 그 자체였다.
국민 모두가 스스로의 눈과 귀를 도저히 믿지 못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던 ‘경악’, 막강한 군병력이 대한민국 한복판을 토네이도처럼 휩쓸고 지나간 ‘경악’, 한국도 전 세계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던 ‘경악’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전 국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을 겪은 후, 언론을 통해 하나둘 진실들이 드러나면서 또 한 번 국민들은 공포를 동반한 소름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 진실 속에 군병력이 어떻게 투입됐고 무엇을 의도했는지에 대한 감춰진 비밀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각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군 병력 구성을 보면, 특전사 707부대 외에 북파공작원으로 불리는 HDI 같은 요인납치 전문 및 암살 전문의 특수 병력까지 포함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강 특수 병력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병력이 그날 밤 대한민국 국회 봉쇄와 진입을 위해 투입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무서운 특수 병사들이 대한민국 국회를 대상으로 가동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그 최강의 군병력 투입에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하고 무당이 된 어느 개인이 군 내 주요 장군들까지 움직이며 깊이 개입돼 있었다는 사실도 어이를 상실케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주동한 실체가 다름아닌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그 공포와 경악은 그야말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날 밤, “계엄을 선포한다”,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자 한다”라고 했던 대통령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계엄 당시 군 병력을 투입하며 ‘척결’의 대상으로 지목한 ‘반국가세력’이 정확히 누구를 칭하는지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누구이건 그들 역시 의심의 여지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다.
즉,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척결하겠다’ 외치며 대한민국 최강의 군사들을 움직인 것이다.
다행히도 그날 청천벽력 같은 군병력 발동은 실패로 끝났으나, 불행히도, 우린 여전히 그 날의 경천동지한 사태의 검은 울타리 속에 갇혀 있다.
그 사태에 대한 책임은 국가적으로나 법적으로 터럭만큼도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해결은커녕 더욱 거대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며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 와중에 우린 국가 명운이 걸린 그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에 대한 첫 번째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그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출발이며, 다른 하나는 이전 판으로의 회귀다.
새 출발과 이전의 판으로의 회귀 두 선택지 중 어느 쪽도 결정되지 않고 있는 바, 우린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날의 아찔했던 공포의 사태가 거듭 재발할 가능성 위에 명백히 실존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여전히 그날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한 개인을 조준하고 있던 위기와 위해가, 터럭만큼의 변동이 없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그때와 꼭 같은 권력과 실행 권한을 그 계엄의 주인공에게 다시 쥐어주는 선택지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지금 우린 눈앞에 놓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자의 선택지는 과연 단순한 이전 상태로의 회귀 그것일까.
대통령을 향해 "내가 입 열면 한 달이면 탄핵"이라 으름장을 놓던 한 맹수가 그대로 앉아 있고, 대통령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방어하고자 몸부림치는 부인의 주가조작과 논문표절 그리고 국가 대소사에 관여한 의혹들이 여전히 생생한 잔재로 놓여 있는, 그리고 그에 따른 법적 정치적 공세 속에 지난 계엄 발동의 주인공을 다시 군 통수권과 국가 주요 자리를 얼마든지 바꿔 앉힐 수 있는 권한까지 쥐어주어 되돌려 놓는 그 선택지가 정녕 이번 국가적 대 혼돈사태를 매듭짓고 국정을 이전 사태로 되돌려 놓는 선택 그뿐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 그것은 도박이다. 이전 판으로의 회귀는 단순한 문제해결의 선택지 차원이 아닌, 국가 전체의 명운을 제2계엄의 재발 위험성이 시퍼렇게 도사리고 있는 도박판 위에 올려놓는 감당할 수 없는 미친 도박인 것이다.
신뢰는 파괴됐다.
그날 밤, 그 경악의 장면이 펼쳐지던 밤, 군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척결을 외치며 국회로 군대를 출동시킨 그날 밤,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 자리에 앉혀 놓은 자와 맺은 신뢰는 파괴됐다.
국가 존립 근간이자 가장 중대한 민주주의 헌법에 심각하게 반하는, 군사적 안보와 통치적 신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세계 전체가 씻을 수 없는 생생한 팩트로 목도한 역사적 사태가 터진 그날 밤, 모든 신뢰는 파괴됐다.
그 회복 불가능한 파괴를 다시 믿어보라는 것은 협박이다. 그 부서진 신뢰를 다시 주워들고 국민 앞에 내미는 것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파렴치한 국민 모독이자 범죄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지금 우린, 엄청난 사태를 매듭짓는 ‘첫 선택의 순간’에 서 있는 우린 가장 우선의 기준에 놓아야 할 것이다.
법무팀 백승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