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조 추경에도 '0%대 성장' 공포…경제체력 회복 요원


우석진·이정희·석병훈 경제학 교수·백철우 국제통상학 교수
"시기·규모·내용 모두 부족…정치적 상황이 대응 지연"
"7월부터 기업 통상 피해 본격화…자금난 대응 시급"
"0%대 성장 가능성…새 정부서 추가 경기부양책 필요"



정부가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확정했지만, '필수추경'으로 규정하며 통상 리스크와 내수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상호관세 등 대외 불확실성과 구조적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한국 경제의 체력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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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으로 당장의 위기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7월에 유예된 상호관세가 발효되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본격화할 거로 우려했다. 차기 정부에서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적자국채 발행은 중기적 관점에서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이번 추경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성장 효과는 0.1%포인트(p)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추경은 산불 피해 복구(3조2000억원)와 통상 리스크·인공지능(AI) 지원(4조4000억원), 민생 안정(4조3000억원)에 초점을 맞춘 '피해 회복' 성격이 강하다. 

주목할 점은 과거 추경보다 규모는 크지만 경제적 효과는 오히려 작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를 공개했던 2019년 추경까지 살펴보면 0.1%p 성장 효과는 최저 수준이다. 이는 추경의 성격이 구조적 경기 부양보다는 '재난 대응'과 '산업 안보'에 초점이 맞춰진 결과로 풀이된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17일 추경 브리핑에서 "이번 추경은 경기대응용이 아닌 필수추경"이라며 경기 진작 효과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후 국회의 증액 요구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시기·규모·내용 모두 부족…정치적 상황이 대응 지연"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올해 1분기에 재정을 추가 투입해 시급한 사안에 대응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 편성이 너무 늦었다. 1월에 했어야 했는데 신속집행만으로 해결된다고 상황을 오판했다"며 "한국은행이 나서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경고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오도해 현재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추경을 진행해도 국회 통과와 채권 조달 등을 고려하면 실제 집행은 5월 말, 새 정부 출범 이후인 6월 중반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올해 예산안 자체가 작년 여야 간 대립으로 정상적이지 않았고, 당장 추경으로 가야 했는데 탄핵이라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진행이 안 됐다"며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을 하반기 추경에 대해 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가장 시급한 민생 대응 규모가 너무 작은 반면, 산불 피해 복구는 대부분 예비비 보충 성격이다. 상생페이백 같은 민생 정책은 효과도 미미한데 불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연매출 3억원 이하 자영업자에게 50만원 크레딧을 지원하는 정책은 실효성이 의문이다. 매출 부진이 문제인데 소액 지원으로는 난국을 타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 산업 지원은 한두 달 만에 생긴 문제가 아닌데 급하게 추경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우 교수는 "여당이 없는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국회와 소통하고 타협해 예산안을 내야 하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경안을 제출했다"며 "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 지원금은 반대하면서 온누리상품권은 추진하는 등 정치적 판단이 앞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7월부터 기업 통상 피해 본격화…자금난 대응 시급"

백철우 교수는 이번에 편성된 2조1000억원 규모로 통상 리스크에 대한 시급한 대처는 할 수 있지만 새 정부 출범 후 국정 운영의 방향성이 담긴 새 추경안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백 교수는 "미국 상호관세가 90일 유예됐기 때문에 7월부터 본격 발효가 될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보편관세 10%가 부과돼 6월 말까지는 시간을 좀 벌어서 이번 추경안 정도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7월 이후부터는 기업들의 피해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수출 감소로 인한 자금난 대응에 대출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자금난으로 인건비부터 시작해 기업들의 자금 융통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이번 추경안에는 수출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자금 25조원, 저리대출 15조원 추가 공급 등이 담겼다.

이번 추경에 포함된 '수출 관세 대응 바우처'에 대해서는 "관세 피해 업체들에 4개 분야 500여개 신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업 수요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될지 의문"이라며 "기존의 정부 서비스들을 단순히 묶어놓은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핵심 품목 공급망 관련 비축 계획에 대해 "현재 4월부터 중국산 수출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비축일을 30~40일까지 늘리겠다고 하는데, 중국 외에 베트남 등 다른 국가로 공급선을 다변화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중국에 의존했던 이유는 가격 경쟁력 때문인데, 다른 지역으로 공급망을 전환하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여기에 관세 부담까지 더해진다. 비축뿐 아니라 비용 부담에 대한 정부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소기업 위주의 지원책에 더해 중견·대기업에 대한 지원도 고민해야 한다"며 "중견·대기업도 피해가 클 텐데 이에 대한 방안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0%대 성장 가능성…새 정부서 추가 경기부양책 필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인해 수출 동력이 꺾일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최근 국회에서 "당초 1% 중반대로 예상했던 성장률에 상당한 하방 위험이 있다"며 "미국발 관세충격으로 소비와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주요 국내외 경제기관들의 한국 성장률 전망도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한국 성장률을 0.9%로 낮췄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에서 1.2%로 대폭 하향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2%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역성장 우려까지 제기했다.

우석진 교수는 "올해 한국 경제가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새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하강 추세를 막을 수도 있지만, 현재 정부 방식대로라면 1.5%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새 정부 출범 전에 시급한 사안에 집중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새 정부에서 추가적인 경기부양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1분기에는 역성장 우려가 현실화할 정도로 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수출이 더 악화하면 1%도 달성하기 힘들어 0%대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행 체제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최소한의 역할에 충실하되, 새 정부에서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추가적인 재정 확장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이번 필수추경 재원 중 8조1000억원을 추가 적자국채 발행으로 메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8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한 상황에서 추가 국채 발행은 시장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며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선제적 금리 인하로 대응하는 방안이 낫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단기적인 타격을 완화하고, 올해 본예산과 기금, 공공기관 투자 등 기존 예산의 신속한 집행을 통해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경제부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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