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보이면 일단 산다" 원자재 비상에 전문의약품 수급 불안

"코로나 감기약 수요 줄었지만 이번엔 공급 측면 불안"
일부품목 구입 수량 제한…품절 예상 제품들 계속 나와
납기일 2~3배 늦추기도
약국 "미리 확보 총력…대체조제 간소화하면 일부 해소 가능"

"의약품 공급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부 제품들이 품절될 수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의약품 유통기업 대표)
"요즘엔 주요 약품을 최대한 사둔다. '코푸시럽'(진해거담제)이 계속 품절되다가 잠깐 풀린 적 있는데, 그때 1년치를 사뒀다."(강서구 개국 약사)



약업계가 의약품 공급을 둘러싼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재택치료로 크게 불어났던 감기약 수요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지만, 또 다른 공급 불안 요소들이 넘쳐나서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이슈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두달 넘게 이어졌던 중국의 상하이 봉쇄로 인한 원자재 부족 및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덮쳤다.

한 의약품 유통기업 대표는 "현재 각 약국에서 요구하는 의약품 수량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감기약 등 상당 수 제품은 한 약국당 공급받을 수 있는 수량이 제한되고 있다"며 "코로나 재택치료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전체적인 수요가 제자리를 찾는 반면 이번엔 공급 쪽에서 불안정이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전문의약품인 코푸시럽의 경우 한 약국당 20ml이 12개 들어있는 소형 포장을 8개까지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감기약, 해열제 등 수요 폭증의 여파가 남아있는 제품에 대해선 여전히 어느 한 곳에 쏠리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에 이은 전쟁,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의약품에 들어가는 원료뿐 아니라 포장재, 유류비(물류) 등이 모두 타격을 받고 있다"며 "또 없으면 안 되는 제품들이 품절 예상 목록에 올랐고, 원료 공급 지연에 따라 의약품 공급 역시 몇 달씩 늦어진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통기업 대표 역시 공급 불안정을 지목했다. 그는 "3~4월에 800여개 전문의약품이 품절되거나 위험 상태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절반이 정상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새로운 불안정 제품군이 생기고 있다. 수입 목캔디 제품의 경우 한달에 3000~4000개 들어오던 제품이 원자재 공급 이슈로 50~60개 겨우 들어오는 실정이다. 약 40% 제품의 공급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제약기업으로부터 받는 유통 마진에까지 타격을 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마진 인하에 대한 하방 압력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약업발전협의회 등 단체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제약기업 역시 미리 최대한 원료 물량을 확대하거나 납기일을 2~3배로 늦추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제약기업 관계자는 "당사 원료의 대부분이 미국·유럽에서 들어오는데 최근 원자재 수급이 어렵고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3개월 전에 발주할 것을 1년 전에 발주해 최대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일 통화·화상회의로 파트너사의 재고물량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원료 공급이 힘들 땐 납기일을 늘려 2~3배 늘려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약국가의 고충도 크다. 강서구의 한 약사는 "찾는 약이 (온라인 의약품 주문 프로그램에)보이면 '심봤다'고 말할 정도다"며 "일단 미리 사두지 않으면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에 처방할 수도 없고 약국의 수입도 보전할 수 없다. 감기약의 공급은 어느 정도 정상화되고 있지만, 의약품 원료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더 부족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체조제 절차가 더 간소화돼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그는 "한국은 의약품의 상품명으로 처방하는 제도인데, 수량이 없어서 처방전에 적힌 품목과 같은 성분의 품목으로 대체조제하고자 할 때 절차가 복잡하다"며 "1일 내 의사에 통보해야 하지만 의사에 전화해도 동의를 받아내기 어려을 때가 많다.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시스템을 통해 사후통보하는 방식으로 간소화된다면 공급 부족 상황에서도 유연함이 커질 것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