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취소' 한미 원전동맹 초반 신경전…'오월동주' 가능할까

한전-한수원, 美웨스팅하우스와 협력방안 논의
웨스팅하우스, CEO간 공동선언문 서명 취소해
세계시장 경쟁 한미, 공동진출 가능성은 '글쎄'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사장단이 지난 8일과 9일 연쇄적으로 국내 원전 관련 공기업들과 만남을 갖고, 원전 수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방한 기간 예정됐던 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 공동선언문 서명 행사가 돌연 취소되면서, 해외원전 시장에서 경쟁했던 양측이 한미 원전동맹 주도권을 두고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9일 한국전력(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한국을 방문 중인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사장은 한전, 한수원 사장과 각각 면담을 갖고 원전시장 공동진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지난달 21일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따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원자력 협력을 확대하고, 수출 진흥과 역량개발 수단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한 바 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전날(8일) 이뤄진 프래그먼 사장과의 면담에서 "해외 대형 원전시장에서 공동진출을 위한 협력모델을 개발하고, 그 외 다양한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날 면담에서 "한국의 우수한 사업관리 능력, 기술력 및 공급망과 웨스팅하우스가 가진 강점이 결합한다면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0일까지 머무는 프래그먼 사장은 방한 기간 신고리 3·4호기와 건설이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 등을 방문해 한국형 원전 운영과 건설 역량을 확인할 계획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보도자료에서 이번 면담에 대해 "포괄적 협력 의지를 다지고 협력의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등 실질적 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전날 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전날 계획했던 최고경영자 간 공동선언문 서명 행사를 취소한 것을 두고 원전업계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설정한 윤석열 정부가 정권 출범부터 한미 원전동맹을 강조한 상황에서 한전과 한수원 등 팀코리아 상황도 난처해졌다.

서명 행사 취소는 한미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사업을 구체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임 정부도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지만 구체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업체들이 원전 수주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폴란드, 카자흐스탄 등 전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한미정상회담도 구체적인 사업이 명시되지 않으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협의가 관건이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이를 의식하듯 대통령실도 설명자료를 통해 향후 과제로 제3국 원전시장 진출 방안 구체화를 내걸었다.

아울러 일각에선 취소 배경과 관련해 미국이 장기 운영권 등 핵심사업은 가져가고 한국은 단순 시공·납품 등 기술력만 제공하는 식으로 협력이 제안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 주도권을 고려하면 한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지식재산권(IP) 갈등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웨스팅하우스 AP1000 원전 모델을 기초로 개발된 한국형 원전 APR1400의 IP를 두고, 한전과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17년부터 갈등을 겪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매듭짓지는 못했다.

한미 간 기술교류가 이뤄졌던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도 업체간 IP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지난 2018년 8월 2차 전체회의 이후 완전히 가동이 중단됐다.

한전과 한수원은 이번 웨스팅하우스 측의 방한이 실질 협력의 계기로 보고, 향후 공동 워킹그룹이나 위원회 등을 구성해 해외 원전사업 협력을 구체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서명식은 웨스팅하우스사 측에서 먼저 취소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양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같이 해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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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