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도시개발이…

이인지구 개발하면서 멀쩡하던 분묘 도로로 변해
분묘 발굴·시신 훼손, 최고 10년 징역형
"불효한 후손으로서 고개 들 수 없어"

"멀쩡하던 증조부 묘가 도시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유골이 도로변 어디에 묻혀 있다 생각하니 밤잠을 설칩니다. 차량의 소음과 무게감에 영면하지 못할 증조부를 생각하면 불효한 후손으로서 조상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도시개발조합과 공사업체는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마구잡이식 개발을 해도 되는 겁니까?"



경북 포항시 이인지구 도시개발 과정에서 분묘 1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후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포스코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과 포항시개발자문위원연합회 회장인 강창호(파라다이스 대표)씨는 13일 이인지구 도시개발조합을 방문해 강력히 항의했다.

강 위원장에 따르면, 1950년 전후 조성해 70여년이 지난 증조부 분묘가 지난 3월께 이인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시공하고 있는 지역대표업체인 삼구건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 위원장은 최근 동생과 함께 농사 일을 갔던 아내가 분묘가 없어졌다고 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현장을 확인한 결과, 포항시 흥해읍 대유아파트 도로 앞에 있던 묘가 산 전체를 깎아내는 평탄작업으로 도로 옆 부지로 변해 있었다며 분노했다.

도시개발조합을 찾아 항의하자 A조합장은 "2012년 첫 사업시행 당시 지장물 조사 과정에서 분묘가 없는 것으로 조사돼 그 동안 존재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공사현장 관계자도 "지난 3월께 분묘 존재 사실을 모르고 평탄작업을 시행한 것 같다"며 "분묘와 함께 깎아 내린 흙들은 인근 부지 메움 과정에 사용돼 망실된 유골은 도로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손들은 "지장물 조사 과정에서 누락됐다 하더라도 매년 추석을 전후해 벌초를 다녀오고 성묘를 빠진 적이 없어 누구 봐도 묘소라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민·형사상 고소나 고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손들은 "혹여 누가 봉분을 훼손할까 성묘를 다녀오면 반드시 술병을 둬 연고 묘소임을 표시해 왔다"며 "공사관계자가 모르고 분묘를 없앴다는 것은 상식 밖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건설업체 관계자들도 통상 개발사업 과정에서 분묘는 주요 민원 대상이기 때문에 지장물 조사나 이장 공고 뒤에도 동네 이장이나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하는 것이 상식이어서 해당 공사업체가 분묘인 줄 모르고 훼손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현행법(형법 160, 161조)에 따르면, 분묘 무단 발굴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시체나 유골, 유발 또는 관 속에 놓어둔 물건을 손괴하거나 유기, 은닉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분묘를 발굴해 시체 등을 손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포항북부서 최진 형사과장은 "현장이 망실돼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분묘는 육안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몰랐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분묘 발굴과 훼손 등은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법령은 벌금형이 없어 중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수호 시 도시계획과장은 "도시개발 과정에서 하자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면 조합과 감리사를 대상으로 주의 공문을 발송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 있다"며 "현재는 묘소가 망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원상회복이 불가능해 조합과 피해 당사자 간 협의, 협상을 중재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후손들에게 공사 과정에 대해 정중히 사과한 뒤 후 관례적 절차에 따른 처리와 보상 등을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후손 강창호씨는 "조상의 묘소가 망실돼 불효한 후손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다"면서 "영면에 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증조부를 생각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이어 "참담하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민·형사상 고발이나 고소, 소송 등 후속 절차와 지금이라도 증조부가 영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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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본부장 / 김헌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