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해킹에 줄줄 샌 시험 답안…대책 강구

1학기 중간·기말고사서 영어 제외한 전과목 답안 빼내
동급생 의심에 '덜미'…수개월째 학교는 침입조차 몰라
총체적 관리 부실, 대대적 감사…"성적 지상주의" 자성

광주 한 고등학교 교무실에 수시로 침입해 교사 노트북 여러 대를 해킹해 시험답안 등을 빼낸 재학생 2명이 1학기 중간·기말고사 모두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수사로 학교시설부터 꼭 지켜야 할 출제 정보 보안까지 맥 없이 뚫린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당국은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학교 측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 대대적 감사에 나선다. 일각선 학교 측 부실 관리와 더불어 '비뚤어진 성적 지상주의' 세태가 빚어낸 초유의 사건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 1학기 내내 영어 제외 전 과목 답 빼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27일 업무방해·건조물침입 혐의로 광주 대동고 2학년생 A·B군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4월 중순부터 6월 말 사이 밤 시간대 광주 대동고 교무실에 수차례 침입, 출제교사 노트북 여러 대에서 중간·기말고사 시험 답안 등을 빼내 평가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경찰은 중간·기말고사를 통틀어 두 학생이 총 9과목(지구과학·한국사·수학1·수학2·독서·한문·생명과학·일본어·화학)의 답안을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빼돌린 것으로 파악했다. 통틀어 16과목(중간 7과목·기말 9과목)의 답안을 빼냈지만 유일하게 영어만 유출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 이들은 노트북 화면을 일정 시간마다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는 '악성 코드'가 담긴 USB저장장치를 교사의 노트북에 설치, 문항 정보표(정답·배점) 등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나흘 지난 뒤 교무실에 다시 침입, 교사의 노트북에서 답안 등을 USB에 저장해 빼낸 것으로 조사됐다.


◆ 동급생 눈썰미에 덜미…학교만 몰랐다

선택 과목이 다른 두 학생은 중간고사에선 7개 과목(공동 3개·선택 4개) 답을 빼돌려 각기 5개 과목을 부정 응시했다. 기말고사는 9개 과목 출제 정보를 빼돌려 7개 과목씩 미리 답을 외운 상태로 시험을 치른 것으로 파악됐다.

1학년 때도 중상위권이었던 A·B군은 2차례 시험에서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답안을 못 구한 영어에서만 성적이 엇갈렸다.

이렇게 완전 범죄로 끝나는 듯 했지만 같은 반 학생들의 예리한 눈썰미에 결국 덜미가 잡혔다.

답을 통째로 외운 B군과 달리, A군은 문제지 모서리에 답을 한꺼번에 적은 뒤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면 문제지 모서리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이를 눈여겨본 학생들은 찢겨 있는 쪽지를 다시 맞춘 뒤 정정 전 오답까지 적혀있는 점을 의심, 학교에 알렸다.

결국 학교는 3개월 전부터 무단 침입하고 교사 노트북을 헤집어 본 두 학생의 범행을 까맣게 몰랐다. 학교는 뒤늦게 광주시교육청 보고를 거쳐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 교무실 들락날락, 출제 정보 '줄줄'…대대적 감사

A군 등은 범행 과정에서 교사의 노트북이 있는 교무실 2~3곳을 자유롭게 드나들었지만, 시설 출입·노트북 전산 보안장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교무실 출입문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열려있는 창문으로 쉽게 드나들었고, 교사 노트북에는 해킹용 악성코드까지 설치됐다. 학교 측은 경찰수사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해 범행을 막지 못했다.

이에 시교육청은 '시험관리 부실 정황'이 있다고 보고 지역 68개 사립·공립고의 시험·정답지 관리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인다.

각 학교가 '고등학교 학업성적 관리 매뉴얼(지침)'을 준수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살펴볼 방침이다.

시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 학교에 ▲노트북을 잠금장치가 있는 공간에 보관 ▲퇴근 시 창문 잠금 확인 ▲경비업체 방범망 재점검 등을 요청했다.


◆교내 동요 우려…0점 처리·퇴학도 가능

재시험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대동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시교육청은 전했다.

앞선 2018년에 이어 또 시험답안 유출 사건이 발생, 학생·학부모들이 따가운 주변 시선으로 고충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시교육청은 학교 측이 연루 학생 2명의 1학기 성적을 모두 '0점' 처리하고 퇴학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시험과 퇴학 여부는 교장·교감·학부모·외부인사로 꾸려진 '학교성적관리위원회'와 '생활교육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중간고사 성적은 교육시스템에 입력됐지만 '0점'처리하고 등급 조정만 하면 된다. 이번 사건으로 다른 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등의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성적 지상주의' 세태가 빚은 초유의 사건

교육계에선 학교의 허술한 관리와 더불어 '성적만 올리면 된다'는 학생들의 비뚤어진 욕심이 빚어낸 초유의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학교성적 높이기와 입시 경쟁에만 매달리다 보니 교육의 중요한 사명인 인성 함양은 도외시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본질을 다시 짚어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현직 교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비뚫어진 욕망과 과열된 경쟁이 부른 화다"며 "고착화된 학벌 구조 속에 중압감을 느낀 학생들이 엇나간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전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경쟁 외에도 책임, 공정, 정직 등 다양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몸으로 익힐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현실 가치에 너무 매몰,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도록 인성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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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