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 물꼬…폴란드에 최대 4기 건설 추진

한수원, 폴란드 전력공사·민간 발전사와 LOI
연말까지 예산·자금 조달 등 담은 계획 마련
바라카 원전 이후 최초로 韓 노형 수출 전망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유럽 진출 기여할 듯
"입찰 없이 LOI 체결"…최종 계약 성사 기대
美 업체 소송전에는 "소송 통해 정리될 것"

약 13년 만에 '한국형 원전'의 수출 물꼬가 트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에너지 기업과 최대 4기 원전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협력 의향을 공식화했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사업은 미국 측이 따냈지만, 현지 민간 주도 사업에서는 한국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폴란드 측이 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우리 측과 협의에 나선 만큼 최종 계약까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한수원-폴란드 기업 LOI 체결…최대 4기 건설 추진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한수원, 폴란드 민간발전사 제팍(ZE PAK), 폴란드 국영 전력공사 PGE 등 3개 기업이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 원전 개발 계획 수립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폴란드 에너지정책 2040'에 포함된 기존 폴란드 정부 주도의 원전 계획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별도로 추진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번 LOI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 240㎞ 떨어진 퐁트누프 지역에 APR1400 기술을 기반으로 원전 개발계획 수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양국 기업은 올해 말까지 소요 예산, 자금 조달, 예상 공정 등이 담긴 개발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해당 사업 규모는 최소 2기에서 최대 4기 수준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종 계약 성사 시 수출 규모도 십여 년간 단가 인상, 환율 변동 등으로 추산이 쉽지 않다.

다만 이집트 원전 사업, 바라카 원전 사업 등 사례에 비춰보면 4기 건설 계약 시 최소 20조원대 이상의 수출 성과가 예상된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건설비를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럽다"며 "이집트 원전 사업의 경우 한국형 원전은 아니지만 전체 사업 규모가 4기 건설에 300억 달러였다"고 말했다.

이어 "13년 전 UAE 바라카 사업과도 비교가 어렵다"며 "그때는 4기가 지어졌는데 1기당 5조원 정도의 금액이었다"고 설명했다.

착공 시기는 2026년 이전으로 예상된다. 박 차관은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올해 말까지 추진 주체가 선정되면 내부 준비 절차를 거쳐 2026년도 착공으로 돼 있다"며 "민간 사업도 비슷하거나 더 늦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향후 최종 계약이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로 한국형 원전 노형을 수출하게 된다. 아울러 일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원전 생태계 복원과 한국과 폴란드 간 산업·경제 분야 협력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한수원은 지난 8월 말 약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 사업 계약을 따낸 바 있지만, 이는 구조물 건설과 기자재 공급 계약으로 한국형 노형 수출은 아니었다.

◆"입찰 없이 LOI 체결…문제 있어도 협의 통해 해결"

이날 산업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는 양국 기업이 추진하는 퐁트누프 원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협력하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폴란드 측은 8월부터 협력 의사를 타진했다. 이후 양국 부처와 기업들이 수차례 실무회의를 거쳐 2개월 만에 LOI와 MOU를 체결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LOI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폴란드 측이 별도 입찰 절차 없이 한국과 LOI를 체결한 만큼 사업권을 다른 나라에 넘길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박 차관은 "(폴란드 측은) 한국과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입찰 등 절차 없이 바로 MOU, LOI를 체결한 이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타당성조사를 추진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하고 잘 안되면 차순위로 넘어가는 프로세스가 아니다. '피지빌리티 스터디(feasibility study·타당성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한국과 폴란드의 기업 간, 정부 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협의가) 진행되다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부분은 특별히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차관은 미국 원전 업체와의 소송전에 따른 수출 우려에 대해서는 "소송 결과, 진행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지금 이야기하기 어렵다"면서도 "한국은 지속적으로 원전 기술을 개발해왔고 사실상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독자적 기술이라고 주장하기에 그런 부분은 소송 과정을 통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컬럼비아 특구 연방지방법원에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수출에 자사 기술이 쓰였다며,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한수원과 한국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바 있다.


◆정부 사업은 고배…"폴란드, 美와 전략적 관계"



이번 LOI 체결과 관련해 민간 주도 사업에서는 우위를 점했지만, 폴란드 정부의 원전 6기 건설 사업에서 미국에 밀린 데 따른 아쉬움도 나온다. 앞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 2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핵에너지 프로젝트에 웨스팅하우스의 신뢰할 만하고 안전한 기술을 사용하기로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폴란드가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으로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폴란드가 미국과 (2020년 10월) 정부 간 협정(IGA)을 체결하며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원전 사업) 제안서를 내고 경쟁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의 수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한편 산업부는 새 정부의 원전 수출 의지와 정책을 통해 이번 LOI 체결 등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폴란드 대통령에게 원전 수출 지원 의지를 밝히고, 같은 시기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폴란드를 찾아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소개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창양 장관은 "이번 MOU와 LOI 체결로 폴란드와 긴밀히 협력하게 돼 상호 윈윈할 계기가 마련됐다"며 "2030년까지 원전 수출 10기 목표 달성을 위해 지난번 엘다바 수출에 이어 폴란드 협력 사업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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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