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승진했어' 기쁜 소식 불과 몇 주밖에 안 됐는데…"

뒤이어 빈소 차려진 광주 출신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 "이타적이던 조카…사고 통제불능 이유 밝혀야"

 "이제 나더러 어떻게 살라고…"

30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 흰색 승합차량이 무겁게 깔린 밤공기를 가르며 지하주차장에 도착하자 유족들 사이에서 통곡이 울려퍼졌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로 숨진 A(24·여)씨의 시신이 흰 천에 덮인 채 승합차에서 내려지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동용 침대에 실려 참관실로 들어가는 딸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다리가 풀린 탓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린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벌써 세상을 떠나야 했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A씨의 이름을 외치고 또 외쳤다.

일가 친척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장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충청도 한 대학에 진학한 A씨는 졸업 이후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다 올해 중순께 서울 소재 유명 백화점에 취업했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입사 3개월 만에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기도 했다. A씨는 승진 소식에 발맞춰 휴가를 얻어 광주로 내려와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들은 A씨가 오랜 자취 생활로 타향살이에 거뜬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매일같이 A씨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다.

특히 사고 당일 지낸 외할머니 제사로 오래간만에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는 약속 때문에 미처 오지 못한 A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김치를 좋아하던 딸에게 새로 담근 김치를 보내줘야겠다' '승진한 딸이 백화점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르고 싶다고 했더라' 등 A씨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전날 오전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아침에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를 본 가족은 A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대전화를 돌려준다는 말에 아버지가 서울로 향하면서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실종 신고를 했다.

서울 도착 불과 몇 시간 만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A씨가 서울 한 병원에 안치돼있는데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흰 천에 덮인 채 아버지를 맞았다. 숨진 A씨는 앞서 이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진 B(24·여)씨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생전 A씨의 이타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오열했다.

A씨와 세 살 터울인 친오빠는 31일 "바쁜 가운데서도 가족들에게 선물을 돌리던 때가 엊그제같다. 특히 어머니를 유독 잘 따랐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A씨가) 숨졌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허망하다"고 말했다.

A씨 고모도 "온 가족에게 싹싹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친척들 사이에서 대견하다는 평가가 자자했는데 칭찬을 들은지 하루 사이에 이렇게 되고 말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위험한 골목에 인파 수천 명이 몰린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반드시 조사해 유족들에게 밝혀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의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엉키면서 154명이 숨지고 103명이 다쳤다.

이태원에는 야외 마스크 해제 뒤 맞는 첫 핼러윈을 앞두고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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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강진 / 채희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