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곳곳 뒤덮은 정당 현수막에 '막말' 판쳐

'이완용', '깡패' 등 여야 비난 홍보전...시민들 눈쌀
민간홍보 현수막은 즉시 가위질...도시미관마저 해쳐
"학폭만 문제인가, 언어폭력 보는 것 같다"

'이완용, 깡패, 친일매국, 정순신판 더글로리, 이재명판 더글로리, 검사독재...'

건널목이나 사거리를 뒤덮은 정당 현수막 문구다. 7년 전에 있었던 '박근혜 탄핵 무효'까지 등장한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구 법원사리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각 정당 지역위원장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여기저기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 도로나 광장은 물론 평택시 안중읍에서 포승공단으로 향하는 한적한 사거리에도 현수막은 어김 없이 나 붙어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어지럽다.

통상적인 정당활동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정당들의 현수막을 허용했지만 막말 수준의 문구가 문제다. 수원시 매탄4동의 한 시민은 "현수막 내용을 유심히 읽어봤더니 대부분 상대를 비방하는 막말이어서 학생들이 보면 정치인들의 수준을 폄훼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은 둔 학부모 이 모씨는 '연진아, 너희 아빠도 검사니?'라는 플래카드의 뜻이 무엇이냐고 딸이 묻길래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곤혹스러웠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지럽게 나 붙은 정당현수막의 문구들이 오히려 교육에 역효과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처럼 올해들어 갑자기 거리에 정당 현수막이 늘어난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3명의 대표 발의로 옥외광고물관리법(8조)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무 곳에나 15일 동안 자유롭게 부착할 수 있다. 종전 옥외광고물법에는 ‘광고물 등을 표시하거나 설치하려는 자는 허가를 받거나 신고해야 한다'고 돼있었으나 정당현수막은 예외로 했기 때문이다.

법 개정 취지는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를 보는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정당끼리의 싸움으로만 비쳐져 짜증만 날 뿐이다.

시민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다. 일반인들이 분양 공연 병원안내 등의 홍보 현수막은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설치된 게시대에서만 가능한데 비해 정당에서 붙이는 현수막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로변에 나 붙은 정당 현수막은 운전자나 보행자의 시야를 가릴 수도 있는 데다 자영업자 가게의 간판을 가리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수원시 영통구의 시민 김 모(망포동·43)씨는 "학폭이 사회문제화하고 있는데 현수막의 문구들은 마치 언어폭력을 보는 것 같다. 정당보조비 등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데 돈을 쓰면서 환경까지 망쳐서야 되겠느냐"며 "일부 지자체에서 이 문제를 건의하고 있듯이 이제 적절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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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본부장 / 이병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