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北 북 지령문 90건·보고문 24건·암호해독키 등 분석
유튜브 영상에 '토미홀' 단어 포함된 댓글 올리면 접선가능
"이 오토바이는 오르막길에서 잘 나가지 않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한 오토바이 관련 튜토리얼 영상에 달린 댓글. 평범한 댓글처럼 보이나 이는 북한에 접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암호일 수도 있다.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민주노총 간부들이 이처럼 사전에 합의된 평범한 단어를 댓글에 포함해 다는 방식으로 북한과 연락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유튜브 댓글 등을 통해 북한과 의사소통한 것을 확인한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한으로부터 유튜브 링크 주소와 함께 "'토미홀'을 포함시킨 필명이나 글을 올리면 출장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고, 불가능하다면 '오르막길'을 포함시킨 글을 올리다 출장이 가능한 두 달 전에 '토미홀' 단어를 올려달라"는 지령을 받고 이 같은 댓글을 달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10일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검사 정원두)는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A씨 등을 구속기소 하며 이러한 북한 지령문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북한은 A씨 등에게 100여 건의 지령문을 보내 대남 공작을 위한 조직 결성과 세부적인 활동 등에 대해 여러 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과 국가정보원, 경찰 등은 민주노총 사무실과 A씨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역대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 최다 규모인 총 90건의 북한 지령문과 보고문 24건, 암호해독키 등을 확보·분석해 이들 범행을 밝혀냈다.
검찰에서 분석한 지령문을 보면 A씨 등은 북한 문화교류국을 '본사', 민주노총 지하조직을 '지사'로 지칭했다. 민주노총은 지하조직의 지도를 받는 조직이라는 차원에서 '영업1부'로 불렸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초월적인 존재라는 의미에서 '총회장'으로 표기했다.
북한은 지령문을 통해 "전망적으로 능력 있는 사원들과 핵심성원들을 영업1부 중앙과 산별 및 지역단위 교육선전기관들에 계획적, 집중적으로 포치하고 지사의 영향 하에서 활동하는 경향성 좋고 전문지식과 교육자적 능력을 겸비한 학자들과 교원들을 적극 인입하라"며 지하조직으로 새 인물을 끌어들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A씨는 북한에서 알려준 총 5단계에 걸친 지하조직 조직원 인입 절차를 실행하고, 북한 공작원들이 신규 조직원을 검열해 승인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인적 사항 등을 정리해 보고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아울러 북한은 A씨 등에게 김정은 숭배 열풍을 고조시키는 등 친북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하고, 국내 정치 이슈와 관련한 여론 조작 등을 지시했다.
2019년 2월엔 당시 야당 인사의 5·18 망언을 계기로 농성 투쟁 및 촛불시위 진행하기, 같은 해 4월에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방한 시 회담장소와 숙소 주변에서 계란 투척, 성조기 찢기 등 투쟁을 연구해 실천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6월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0년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등을 앞두고 구체적인 활동방향과 보수당 집권을 막기 위한 단계별 투쟁방향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특정 보수 언론매체를 가짜뉴스 전파 소굴로 간주하는 서명 운동과 구독 거부 및 시청거부 운동을 벌여 사회적으로 고립 위축시키는 데 기여하라는 내용의 지령문을 보낸 것으로도 확인됐다.
북한은 A씨 등과 접선하기 전 접선 장소와 시간뿐만 아니라 동작 등 사전 신호까지 지령문에 적어 보내기도 했다.
2019년 7월 북한이 보낸 지령문을 보면 지사장이 약속 시간 5분 전 계단에서 대기하다가 정시에 생수병을 열고 마시는 동작을 실행하면, 북측 공작원이 이를 확인 후 손에 들고 있는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2~3차 닦는 동작을 실행해 접선하는 방식이다.
혹시 미행이 붙었을 경우를 대비해 '두통'이라는 은어를 정해 전화로 미행 여부를 알리고, 이를 알리기 곤란한 경우 담배를 피워 무는 신호로 대신하는 세세한 내용까지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영화 시나리오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북한 지령으로 정해주고 그에 따라 접선이 이뤄진 것을 최초로 확인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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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본부장 / 이병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