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만에 독립유공자된 김양순 선생…경남 사학자 노력

김양순 선생, 1919년 광주 3·1운동 가담해 옥고
정재상 사학자, 영호남 항일투쟁사 연구 과정서 발굴
광복 79주년 만에 서훈 신청 '독립 유공 대통령 표창'

일제강점기 여고생 신분으로 폭압에 항거했던 전남 장성 출신 여성이 경남에서 활동하는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광복 79주년, 3·1만세운동 가담 105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에 따르면 광주 3·1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장성 남면 출신 김양순(金良順·1902~?·여) 선생이 광복 79주년 만에 대통령 표창 정부포상을 받았다.

정부포상은 정재상 소장이 지난 2009년 국가기록원 기록물에서 1919년 당시 광주수피아여고에 재학 중이던 김양순 선생(당시 17세)이 광주 3·1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사실을 확인 후 서훈을 신청해 결실을 맺었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양순 선생은 당시 경남 하동 출신 홍순남(광주수피아여고생), 순천 출신 이봉금(광주수피아여고생), 경북 경주 출신 양태원(학생), 제주 출신 고연홍(학생)과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독립 만세운동이 광주에서도 곧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고종황제의 국장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한 김철 선생 등이 3월 5일 광주로 돌아와 만세운동의 광경과 시위 정황을 청년·지역 유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했고, 이 자리에 있던 참석자 모두는 광주에서도 똑같은 독립 만세운동을 하자는데 동의했다.

3·1운동 거사 일은 당초 광주 부동교(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 아래에서 큰 장이 열리는 3월8일로 정했다.

하지만 독립선언서 등사와 태극기 제작 등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소식을 은밀하게 알리는 데 시간이 부족해 작은 장이 열리는 3월10일로 연기했다.

마침내 거사 일이 되자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농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당일 오후 3시가 되자 누군가 큰 태극기를 높이 들어 독립 만세를 외쳤고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동시에 독립 만세를 연창하며 시장 안을 행진하기 시작했다.

양림동 쪽에선 기독교인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했고, 북문 쪽은 광주농업학교 학생과 시민들이 맡았다.

시위행진은 오후 5시까지 시장에서 읍내를 돌아 경찰서 앞까지 이어졌다.

시위대 기세에 눌려 어찌할 바 몰랐던 일본 헌병과 경찰은 대열을 정비해 시위대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일로 주동자 김강·김철·홍순남 등 가담자 대부분이 체포됐다. 시위에 참여한 김양순 선생은 징역 4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재상 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광복 79주년 만에 김양순 선생이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게 돼 기쁘다"며 "우리 후세들은 선조들의 민족애와 위국헌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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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