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만세 선배 잇다" 나주노안초, 개교 100돌 독도 탐방

선배들 1929년 12월2일 교정서 독립 만세 외쳐
개교 100돌 기념사업회 재학생 독도 탐방 추진

학교 정문 중앙에 '학생독립운동 기념비'가 우뚝 서 있는 전남 나주 노안초등학교 학생들이 개교 100돌을 맞아 선배들이 마련해 준 독도 탐방 행사를 마쳤다.

4일 나주노안초교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4~6학년 학생 23명을 대상으로 울릉도·독도 역사문화·체험학습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수토역사박물관, 안용복기념관,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독도박물관 견학을 통해 국토와 주권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4월1일 개교 100돌을 맞아 동문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기획했다.

동문으로 이뤄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추진위원회'가 후배 23명 전원이 참가하는 '독도 탐방' 프로그램 연수비용 전액을 지원했다.

독도 탐방 연수는 '이 땅에서 외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는 치욕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관을 재정립 하자'는 선배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나주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였다.

전국으로 확산한 이 운동은 앞서 10월30일 광주로 통학하던 나주학생과 일본인 학생들 간 나주역에서 빚어진 충돌이 계기가 됐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독립운동가 박준채는 나주역에서 사촌누이 박기옥이 일본인 학생에게 희롱을 당하자 이에 대항했고 한·일 학생 간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주에서 촉발된 한·일 학생들의 충돌은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승화돼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했다.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일파만파 번져나가자 당시 노안 공립보통학교(현 나주 노안초교) 3회 졸업생 정찬교(鄭燦敎)와 4회 졸업생 정찬주(鄭燦冑)는 고향인 노안에서도 독립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두 학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지 20여일이 지난 1929년 11월23일 노안 보통학교 후배 홍달식(洪達植)을 만나 독립만세 운동 계획이 담긴 문서를 건넸다.

이후 홍달식 등은 가장 최고 학년인 4학년생 학우들을 규합한 끝에 거사 일을 12월 2일 월요일로 확정했다.

이들은 예정대로 당일 아침 조회를 마친 직후 전교생을 이끌고 비밀리에 만든 태극기를 손에 든 채 교문을 향해 목이 터지라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뛰쳐나갔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곧바로 진압됐다. 정보를 입수하고 학교 근처에 잠복해 있던 일제 경찰이 학교를 포위했고, 일본인 교사들이 홍달식을 교장관사로 연행하면서 독립을 갈구하던 외침은 운동장 안에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홍달식은 주재소에 9일간 구금된 채 고문을 당했고 지역 유지들의 석방운동으로 겨우 풀려난 것으로 전해진다.

교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홍달식은 1961년 별세했으나 후손들은 모교 발전을 위한 아름다운 손길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거친 나주 노안초등학교 교정 중앙에는 당시 독립만세 운동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동문회를 중심으로 1986년 3월 세운 기념비가 눈에 띈다.

기념비에 새겨진 '우리 선배들의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애국정신이 투철하였음을 후배들에게 길이 남기고자 이 사실을 여기 새겨 남기노라'고 쓴 글귀는 지워지지 않는 역사 교과서로 남아 있다.

이번 독도 탐방에 참여한 한 학생은 "가는 길이 굉장히 멀고 힘들었으나 막상 독도에 도착해 우뚝 서서 넓은 동해를 바라보니 나라 사랑의 마음이 샘솟았다"며 당시의 벅찬 감동을 전했다.

정병렬 나주노안초등학교 교장은 "앞으로도 학생들이 바른 역사관과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하고, 더 넓은 안목을 가진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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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 김금준 대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