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간호법 보유 OECD국가 11개"
간협 "11개는 왜곡된 주장…33개"
서로 다른 기준 적용해 산출한 탓
의협, 간호법 철회 비대위 구성도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계 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대선 전 간호법 제정을 추진 중인 대한간호협회(간협)와 이를 저지하려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면서 간호법을 보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수 논쟁까지 불붙었다. 이런 가운데 의협이 간호법 제정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비상대책특별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해 갈등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간호법 보유 OECD 회원국, 의협 "11개" VS 간협 "33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정연)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OECD 회원국 38개국 중 간호법을 보유한 국가는 독일, 그리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아일랜드, 일본,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터키 등 11개로, 약 30%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봉식 의협 의정연 소장은 "벨기에, 칠레 등 간호법이 없는 국가(13개)는 우리나라처럼 의료법을 통해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고 나머지 14개 국가는 의료법이 아닌 별도의 보건전문직업법에서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협은 '간호법'을 보유한 해외 국가들은 국내와 달리 면허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간호법과 해외 간호법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해외 여러 국가를 예로 들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간협을 겨냥한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의료인 면허관리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복지부를 통한 종합적인 면허관리 체계가 유지되려면 직역별 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실익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간협은 20일 입장문을 내고 "의협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OECD 회원국 중 간호법 보유국 수(11개)'는 사실과 다르다"며 "OECD 38개국 중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33개국으로, OECD 가입국의 86.8%가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OECD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총 96개국이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을 보유한 OECD 33개 국가 중 일본, 콜롬비아, 터키는 20세기 초부터 독립된 간호법이 있었고, 미국과 캐나다는 각 주마다 간호법이 있어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교육과정 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는 게 간협의 설명이다. 또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보유해온 간호법이 2003년 이후 다른 법에 통합됐지만, 우리나라가 제정을 논의 중인 간호법이 지향하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간협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체코, 영국, 독일 등 간호법을 보유한 나머지 OECD 26개국은 유럽국가간호연맹(EFN) 가입국으로 국가별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고, 2005년 유럽연합(EU)의회를 통과해 제정된 ‘통합된 EU 간호지침’을 준수하고 있다. EU 간호지침에는 간호사의 정의, 자격, 업무범위, 교육, 전문 역량 개발 등이 담겨 있다.
두 의료단체가 간호법을 보유한 OECD 회원국 수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간호법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다. 의협은 간호법으로 명시된 법안만 따진 반면 간협은 간호법으로 명시된 법안과 함께 의료법 안에 포함된 간호법도 포함시켜 산출했다. "해외의 경우 의료법 안에 포함된 간호법도 우리나라에서 제정을 논의 중인 간호법의 취지를 담고 있다"는 게 간협의 입장이다.
◆의협 "간호법 대신 현행 의료법 정비"…간협 "간호 특성 반영 한계"
의협은 간호법 대신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간호관리료(병상당 간호인력 수에 따라 6~7등급으로 구분해 5등급 이상은 기준 간호관리료의 10~70%를 가산해 받는 제도)인상,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를 제안했다. 하지만 간협은 간호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 소장은 "간호사 급여 수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적정 수준의 간호관리료를 보장하고 합당한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원가보전율이 38.4%에 불과한 간호관리료를 최소한 원가보전이 가능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건의료 인력의 열악한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하위법령을 조속히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일부 OECD 국가들에서 제도화된 ‘보건의료인력 관리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 전문성이 담보된 보건의료인력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보건의료인력 전문기관을 설치하고 업무범위나 근무환경, 처우개선 등을 논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간협은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로는 간호법이 지향하는 취지를 반영하기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
간협은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의 면허와 자격,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관한 사항이 중심으로, 총 131개 조문 중 83개(63%)는 간호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경우 의사를 비롯한 의료기사, 영양사 등 20개 직종의 수급, 교육, 근무환경 개선 등을 아우르고 있어 간호의 특성에 맞는 법률을 마련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간협은 "의협은 초고령 사회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 건강을 위한 민생법안인 간호법 제정에 함께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은 20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간호법 제정 저지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의협은 "간호법 철회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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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행정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