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생산자 단체 반대에도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
원유가격 산정 주체, 낙농진흥회 의사결정구조도 개선
공운위서 공공기관 결정 촉각…생산자 단체 강력 반발
우유 가격 산정 방식 개편을 놓고 정부와 원유 생산자 단체 간의 갈등 국면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우유 가격 산정 시 원유 생산비와 물가 만을 반영하다보니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부작용이 있어 용도별로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나아가 원유 수급을 조절하는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 지정도 추진 중이다.
생산자 단체 측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차등가격제와 낙농진흥회 이사회 개편을 밀어 붙인다"며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작년 우윳값 인상으로 갈등 촉발…차등가격제 도입 놓고 격화
지난해 8월 우유 가격을 결정하는 원유(原乳) 가격이 ℓ당 21원 인상되면서 우유와 관련 유제품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정부는 당시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 상승 추세 속에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을 덜기 위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에 인상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원유 가격 결정체계 개편에 나섰다. 생산비 연동제에서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차등을 두는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했다. 생산자 단체 측 입김이 센 낙농진흥회의 이사회 구성도 개편하기로 했다.
낙농산업발전위는 지난해 12월 음용유는 현재 ℓ당 1100원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는 ℓ당 900원으로 낮추는 차등가격제 도입을 예고했다. 총 생산량은 205만t에서 222만t으로 늘려 낙농가 수익이 줄어들지 않도록 했다. 생산자 단체가 절반가량인 낙농진흥회 이사진에 변호사 등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등 의사결정 구조 개편도 추진키로 했다.
그 동안 우유 가격은 원유 가격 생산비에 따라 인상 요인이 결정됐다. 이렇다보니 우유 소비량은 줄어드는 데 가격은 오르는 등 시장원리가 반영되지 않았다. 2001년부터 최근 20년간 국내 원유 가격은 72.2% 오른 반면, 유럽(19.6%)과 미국(11.8%)은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작았다.
이에 생산자 단체는 그 동안 사료 가격 등 생산비 단가가 크게 올랐지만 실제 원유 가격은 지난해 인상 이전까지 8년간 ℓ당 7원 인상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원유 가격이 ℓ당 21원 오르자 우유 가격은 ℓ당 200원이 인상됐음에도 생산자 단체가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부,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 추진…생산자 단체 "모몰염치 극치"
농식품부는 생산자 단체 측의 반대에도 가격 차등가격제 도입과 낙농진흥회 의사결정 체계 개편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 지정도 추진한다.
정부가 이달 안으로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을 확정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매듭짓겠다는 뜻을 생산자 단체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오는 28일로 예정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이 안건으로 상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운위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기업과 공공기관 지정은 물론 관련 정책을 최종 의결한다.
농식품부와 생산자 단체 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낙농진흥회에서 더는 관련 논의가 진행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이사회 개의 요건 등을 변경, 제도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현행 공운법에는 정부 지원액이 기관 수입액의 절반을 넘는 단체에 대해 정부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낙농진흥회는 정부 지원액 비중이 8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 지정 요건은 갖춘 셈이어서 공운위 결정만 있으면 정부가 낙농진흥회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생산자 단체는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해 원유가격 21원 인상 이후 우유제품가격이 최대 200원까지 상승했지만 정부는 유통업체와 유업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대신 생산자물가 폭등에 따른 낙농가의 원유가격 인상을 물가의 주범으로 간주하는 '모몰염치'(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 측은 농식품부가 낙농가 강압책의 일환으로 2022년도 원유수급조절사업지침도 시달하지 않아 낙농진흥회는 1월부터 농가의 유대(농가 수취 원유값)를 3.84% 체불했다고 주장했다.
또 기재부가 낙농진흥회를 전기·가스와 같이 공공기관 지정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정부가 FTA의 최대수혜자인 유업체에게 원유가격 인하, 쿼터삭감 면죄부를 주기위한 개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위법한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을 강행한다면 우리 생산자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국 낙농가의 정당한 요구를 농식품부가 계속 묵살할 경우, 향후 모든 책임은 농식품부에 있음을 강력 경고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