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성 5·18 당시 계엄사령관 사망…정호용만 남아

8일 경남 고성 선영에 묻혀
"전부 내 책임은 아냐" 진술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항쟁 진상 규명 활동에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이희성씨가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8세.



10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숨진 이씨는 서울 한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8일 경남 고성군 선영에 묻혔다.

이씨는 1979년 10·26 사태 이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12·12 군사반란에 참여하면서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으로 꼽힌다.

5·18 당시에는 공식 지휘 체계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계엄군의 발포 허가 등 자위권 발동을 천명하는 담화문을 본인 명의로 발표했으며,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의 시민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벌인 상무충정작전을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과 함께 검토하기도 했다.

이후 이씨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 넘겨져 1997년 내란죄·반란죄 수괴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국민대통합'을 이유로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됐다.

이씨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 조사위)가 선정한 '5·18 학살과 인권 유린 책임자' 중 1명이다.

특히 5·18 유혈 진압의 책임이 가장 무거운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으로도 꼽혔다.

5·18조사위는 이씨가 5·18 당시 계엄군 증파, 집단 발포, 광주외곽봉쇄작전, 최종 진압 등을 논의한 '9인 회의'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 대면 조사도 벌였다.

이씨는 지난해 대면 조사에서 책임을 부인하며 "내가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도 했다. 해당 진술에 대해선 전두환의 5·18 진압 결정 개입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씨의 사망으로 신군부 중요 인물 5명 중 생존 인물은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만 남았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 등 두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생전엔 조사를 거부하다, 지난해 한 달 간격으로 숨졌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4월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숨졌고, 이씨도 뒤를 따랐다.

정호용씨는 5·18조사위의 진상 규명 활동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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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