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위헌 기속력' 두고 대법·헌재 갈등
첫 한정위헌은 1991년…이후 충돌 지속
1997년 사상 첫 재판취소…갈등 최고조
최근 6년 한정위헌 없었으나 다시 충돌
'한정위헌'의 효력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해묵은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헌재가 25년 전 한정위헌 효력을 이유로 법원의 재판을 취소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최근 6년간 헌재가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삼가며 충돌이 잦아드는 듯했으나, 역대 두 번째 재판취소 결정이 나오면서 갈등이 재점화했다. 사실상 최고 사법기관이 둘이라는 우리나라 사법구조 탓에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헌법상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외부의 기관이 그 재판의 당부를 다시 심사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1988년 출범한 헌재가 법률의 특정 해석을 전제로 위헌 판단을 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 건 1991년부터다.
당시 한 언론사는 특정 인물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는데 해당 인물이 손해배상 소송과 더불어 사죄광고를 요구했다. 이에 언론사는 민법 764조가 명예훼손에 따라 사죄광고까지 명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냈다.
헌재는 민법 764조상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를 포함하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놨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긴장관계가 최고 수위에 달했던 건 앞서 1997년이었다. 양도소득세 산정기준에 관한 사건에서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했지만, 법원이 부정하는 취지로 판결을 하자 헌재가 사상 첫 재판취소 결정을 내놨다.
이후 헌재가 재판을 취소하는 일은 없었지만 양측은 한정위헌의 효력을 두고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지난 2008~2009년에는 옛 상속세법 조항을 두고 헌재가 '세금을 내야 하는 상속인에 상속포기자를 포함하면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했는데, 대법원은 '상속포기자는 세금납부 의무가 있는 상속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한정위헌의 효력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이 '위상 경쟁'에만 머무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서로가 최고 사법기관임을 자임하면서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 경쟁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최고 사법기관 간 위상경쟁이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한정위헌의 효력을 두고 노선이 정리되지 않은 탓에, 과거 양도소득세 부과 사건에선 세무당국이 어느 기관의 입장을 따라야 할지 몰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헌재는 2016년 이후 한정위헌 결정을 하지 않았는데, 지난달 역대 두 번째 재판취소로 인해 위상경쟁이 다시 불붙은 모습이다.
특히 헌재가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부정한 재판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으면서, 앞으로 양측이 충돌할 소지는 더 많아졌다.
법조계에선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법구조 때문에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헌재법 68조 1항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해당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을 거듭 바꾸면서 예외가 되는 재판의 범위를 넓혀오는 중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독일은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이 가능하고 연방헌재도 법원의 재판을 심판할 수 있다"라며 "우리나라가 독일의 모델을 수입했는데, 처음 법을 만들면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해 권한이 모호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