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13과목 객관식 4660문제 출제
짧게는 7일, 길게는 18일 합숙해 마련
합숙 시작 후 음식물쓰레기 반출 안돼
통제 생활 등 이유로 위원 위촉 어려움
'대한민국 공무원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공무원 시험 문제 등을 출제하는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가 2005년 준공 이후 17년 만에 지난 27일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시험출제 및 공직 채용과정의 투명성 등을 위해 철저히 통제되는 국가보안시설이다.
공무원의 역사는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가고시센터에서의 문제출제는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문제은행 구축, 출제기획 및 준비, 합숙 출제, 인쇄 및 문제지 인계, 정답확정 등 하나의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까지 17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교차, 공동 검토, 맞춤법 검사까지 거치는 까닭에 1개 과목 시험 문제 출제 과정을 담은 문서는 수십 쪽의 두께를 자랑한다. 센터에서는 지난해 213과목 객관식 4660문제가 출제됐다.
출제위원과 선정위원의 경우 출제한 문제뿐만 아니라 위촉 사실 자체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승낙서에 서약한 뒤 위촉된다. 3년 이내 해당 과목의 학원강의, 수험서 발간(계획) 및 고시반 강의, 지도 사실이 없어야 한다. 이들과 정답확정위원, 면접위원, 재검토요원을 포함해 7551명의 시험위원이 위촉된 상태다.
1개 시험 출제를 위해 시험위원들은 짧게는 7일, 길게는 18일 합숙을 거친다. 센터는 올해 국가직 공무원 시험 등 17종의 시험 347개 과목 출제를 위해 285일 활용될 예정인데, 합숙일만 207일이다.
합숙출제 기간 하루 전 창문과 외부출입문이 봉쇄되고, 오직 1개의 출입문만이 열린다. 시설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휴대전화나 스마트워치 등 통신기기를 맡겨야 하고 퇴소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다. 몰래 스마트폰을 숨겨왔다고 해도 무선랜 차단시스템이 활용을 막는다. CCTV 69대가 시설 내부와 외부를 쉬지 않고 담고, 보안 요원도 곳곳에 배치됐다.
합숙이 시작되면 음식물쓰레기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합숙 위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시험출제 직원과 보안요원 동행 하에 외출할 수 있다.
합숙 위원들은 4평 남짓의 창문이 열리지 않는 2인실에 묵거나, 3인실, 5인실 등에 지내며 문제를 출제한다. 코골이, 잠꼬대 등 생면부지 사람의 잠버릇을 견디다 못해 방을 나와 텐트를 치고 잠을 잔 위원도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인원이 합숙하는 시험은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인데, 지난해 268명이 동시에 합숙을 했다. 이 경우 식당이 이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없어 시간을 정해 교대로 식사가 이뤄진다.
사람이 몰릴 경우 유일한 산책로인 하늘정원이 붐빈다. 한 바퀴를 도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이 산책로의 혼잡을 막기 위해 요일별로 진행 방향을 표시해 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변에 드론이 나타난 적이 있어 120개의 낚싯줄이 드론 착륙 방지용으로 설치됐다.
센터 관계자는 사연 없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한 문제를 놓고 반나절 이상 토의하는 일이 일상적이고, 만에 하나 있을 오류를 없애기 위해 문제가 완성될 때까지 자정을 넘어서까지 검토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시험출제오류율이 0.06%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철저히 통제된 생활에 비해 시설과 처우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나아지지 않은 탓에 위원들을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시험위원, 재검토요원, 시험출제과 직원들이 연금생활이라는 어려운 여건을 견딜 수 있는 힘은 국가를 위해 일할 유능하고 실력 있는 인재를 뽑는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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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행정 / 허 균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