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묵은 외환시장 수술…"접근성 높이고, 안전성 키운다"

기재부, 외환시장 구조 개선 선진화 방안 발표
"외환위기 트라우마로 시장안정 최우선 운영"
해외 투자자 참여 제한…성장 둔화·기형적 구조
해외 금융기관 국내 참여 허용…운영시장 연장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충격 이후 20년 넘게 폐쇄적으로 운영한 외환시장을 개선한다. 우리나라 무역규모나 자본시장은 선진국 수준의 괄목할 성장을 거뒀지만 외환시장은 해외 투자자들의 접근이 제한되는 등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다는 지적에 따라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는 10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외환시장 구조 개선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 외환시장은 과거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로 시장안정을 정책 최우선에 두면서 수십년 동안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며 "외부로부터의 접근성이 제약 받고 이로 인해 국내 시장과 산업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 50여개 글로벌 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환시장 접근성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내 외환시장은 원화의 역외 외환시장 거래가 불가능하고, 국내에서 거래해야 하지만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은행간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달러나 유로, 엔화 등 주요국 통화가 역외에서 24시간 거래되는 것과 달리 국내 외환시장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3시30분까지만 운영해 해외 투자자들의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다.

정부는 이 같은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시장 구조가 국내 외환시장 성장을 발목 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성욱 차관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무역규모나 자본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외환시장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연간 무역규모는 1997년 2802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4159만 달러로 5배 넘게 커졌다. 같은 기간 주식시장 거래량도 하루 평균 6억 달러에서 124억5000만 달러로 불었다.

이에 반해 원·달러 현물환 거래량은 1997년 18억3000만 달러에서 2008년 78억1000만 달러로 확대됐지만 이후에는 성장세가 둔화하며 지난해 90억4000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글로벌 외환시장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도 기술혁신 등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국내 외환시장과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접근성 제한으로 역외 NDF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2013년 현물환시장 하루 평균 거래규모는 194억 달러로 NDF 거래(196억 달러)와 비슷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NDF 거래(601억 달러)가 현물환시장 거래(303억 달러)의 두 배에 달했다.

정부는 외환시장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지금의 제한된 시장구조가 시장안정에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차관보는 "폭이 좁으면 유속 빨라지듯 2008년 선박 수주가 호황이던 시기에 조선사의 막대한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율이 지속적인 하락과 절상 압력을 받았다"며 "2018년 이후부터는 개인과 연기금의 해외투자가 확대되면서 대외 환율 상황과는 관계없이 우리 원화는 지속적인 상승, 절하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일방향 거래 유형의 규모가 커져 국내 외환시장의 좁은 문을 관통하게 되면 환율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차관보는 "막대한 거래규모를 바탕으로 NDF 시장의 투기적 거래규모가 원화 현물환시장의 움직임을 주도했다"며 "원화가 국격이나 자본시장 성숙도와 관계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위험통화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강화된 규제와 위험관리로 대외부분 취약성이 크게 완화된 만큼 과거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보는 "2020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환율이나 외환유동성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등 대부분의 주요지표가 과거 위기와 비할 수 없을 만큼 안정된 모습 보였다"며 "미국의 통화긴축으로 달러 강세가 심화되는 시기에도 원·달러 환율 역시 나홀로 변동성이 확대됐던 과거 모습과는 뚜렷하게 차별화됐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국내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으로 국내에 지점을 두지 않은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외환시장 운영시간도 런던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현재 3시30분 마감에서 새벽 2시까지 10시간 연장한다. 추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추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와 함께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자 등록 의무를 폐지하고,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기업은 영문공시를 확대하는 등 외환시장 구조를 손보기로 했다.

김 차관보는 "정부는 외환시장 접근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제고해나가고자 한다"며 "당국과 시장의 규율에서 벗어나는 역외 외환시장에서의 원화거래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 대신 국내 외환시장을 보다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시장구조로 전환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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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조봉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