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출국금지' 키맨들 줄줄이 무죄…이규원도 '사실상 선처'

이광철·차규근 이어 이성윤도 무죄 선고
이규원만 징역 4월 선고유예 판결 내려
"수사상황 감안…직권남용 단정 어려워"
"개인정보 조회·알람 출입국 소관 업무"
"수사무마, 안양지청 자체적 판단일수도"

이른바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핵심 인물들이 1심에서 1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수사가 임박했던 만큼 출국금지 조치가 절차적으로 위법하더라도 통상적인 경우와는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는 1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비서관 등의 선고공판을 열고 이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규원 검사는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로, 사실상 '선처' 성격의 판결이다.

이들은 2019년 3월 김 전 차관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려 하자 이를 불법으로 막은 혐의로 2021년 4월 기소됐다.

이 검사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소속으로 이 사건을 담당하며 출국금지 요청 과정에서 허위 사건번호를 기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출입국 관리 책임자였던 차 전 연구위원과 이 전 비서관 역시 출국금지 과정 전반의 위법성을 눈감아 주거나 주도해 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주요 혐의는 직권남용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조치 자체가 위법하다고 해도 이를 직권남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재수사가 임박했던 상황에서 조치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적 제약이 따랐다는 점을 짚었다. 뇌물수수 의혹 등에 비추어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는 충분히 가능했고 이 같은 상황을 일반적인 출국금지 상황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 시도를 불법으로 금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가운데) 검사와 차규근(왼쪽)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판결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검찰은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해 무죄를, 이규원 검사에 대해서는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공동취재사진) 2023.02.15.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 이규원과 차규근이 일반적 출국금지 방법으로 규제를 했다면 위법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출국을 저지한 것 자체가 아닌 적법한 수단에 의해 가능했음에도 법령 해석을 그르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수단을 선택했다는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이규원과 차규근에게 직권남용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긴급출국금지는 축적된 법리나 판례가 없어 검사들에게도 생소한 제도였고, 법무부와 대검도 수사 개시 전까지 김학의 출국금지가 적법하다는 입장이었다"며, "법률상 요건을 충족 못했다고 해서 이를 바로 직권남용 또는 직권남용의 고의 추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 검사와 차 전 연구위원의 직권 남용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공범으로 기소된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직권남용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차 전 연구위원에게 적용한 김 전 차관 관련 출국정보 무단 조회 등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차규근이 김학의와 윤중천에 대한 출국규제 필요성 판단을 위해 알람 설정 등 출국 여부나 시도 사실을 파악한 것은 출입국본부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한 것"이라며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직권 남용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검사에 대해서는 자격모용공문서작성·행사, 공용서류은닉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4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 대리인 자격을 모용해 출국금지 요청서를 작성하고, 출국금지 과정에서 생산된 서류 일부를 주거지에 은닉한 것에 대한 고의성은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출국금지 요청 후 승인 요청 단계에서야 상위법상 시행령 내용을 인지해 이를 준수하려다 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주거지로 가져가 임의 보관한 관련 서류들은 모두 유효하게 전달돼 효용 침해 정도가 크지 않고 범죄 은폐 또는 증거 인멸의 목적으로 범행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양형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관련 이 검사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서울고검장)에 대한 선고도 진행했는데, 그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해 이 검사를 수사하겠다고 보고하자 외압을 가해 중단시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연구위원이 직접 또는 하급 직원을 통해 안양지청에 수사 무마를 종용하는 압박을 가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조사를 통해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 밝혀지기도 했다"며 일부 통화에 대해서는 안양지청 측이 자체적인 해석으로 사건을 무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 "피고인을 비롯한 반부패강력부 관계자들이 직권남용 수단까지 동원해 굳이 이규원의 혐의를 은폐해야 할 동기가 없다"며 "이규원 검사의 감찰보고 및 수사가 진행되지 못한 것은 피고인 외 윤대진 검찰국장의 연락, 반부패강력부와 안양지청 사이 의사소통 부재, 안양지청 지휘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감찰 보고 및 수사 중단 결정 등이 경합해 발생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