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의뢰인 비밀유지권 갈등 격화
최근 검찰의 로펌 압수수색 등으로 대두
檢 "적법한 절차…비밀 유출 우려 낮다"
변호사들 "절차적 정의 없으면 부작용"
여·야 모두 관련 법안 발의…국회 계류
최근 수사기관이 대형 법무법인(로펌)이나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가운데, 변호사와의 상담 내용 등 의뢰인의 비밀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변호사 업계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하는 만큼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적법 절차란 입장이다. 하지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기본권 훼손을 염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지난달 28일 검찰의 대형 로펌 압수수색과 관련해 수사당국과 사법부를 규탄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훈 협회장은 "검찰이 수사상 편의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한 법률 자문 내역을 입수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국민 기본권을 엄연히 침해하는 수사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는 지난해 12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의 범죄수익 은닉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김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또 같은 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지난달 24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 재판에서 알리바이 위증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 전 부원장 측 이모 변호사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같은 달 10일부터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대형 로펌 및 사건 변호인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이 꾸준히 이뤄지고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로펌 및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위법·부당했다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을 것"이라며 "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라고 했다.
또 "로펌 및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 시 영장에 기재된 항목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진행된다"며 "타 의뢰인과의 상담 내용 등 의뢰인의 비밀이 유출될 우려는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는 이 같은 의견이 근시안적인 생각이라며 절차적 정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정욱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만일 의뢰인이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헌법적 기본권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오로지 실체적 진실 발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위법 수집한 증거를 배제할 이유도 없어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절차적 정의가 사라지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상담 내용이 수사기관에 의해 마음대로 유출된다면, 어느 누가 마음 편히 터놓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이름 때문에 오해를 다소 받는데 비밀유지권(비닉권)은 변호사의 특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를 맡긴 의뢰인, 즉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밀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라며 "비밀유지권이 없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얼마 전 수백 개의 다국적 기업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기업들이 대한민국은 의뢰인 비밀유지권조차 보장되지 않으니 일을 맡길 수 없다고 언급해 대형 로펌들이 고개를 내밀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 의도를 갖고 변호인이나 로펌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나라에서나 목도할 수 있는 일"이라며 "사법 후진국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비밀유지권 도입과 관련해선 수사기관의 수사권 위축을 막을 수 있는 예외 조항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변호사의 비밀유지권과 관련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소속 정우택 국회부의장 등 여당 의원 11명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범야권 의원 14명은 올해 초중순 변호사와 의뢰인의 상담 내용 등이 담긴 서류나 자료 등을 공개·제출하지 못하도록 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냈다.
두 법안 모두 의뢰인의 승낙이 있는 경우나 명백하고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음에도 다른 방법으로 자료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 등 비밀유지권이 적용되지 않은 예외 조항을 뒀다. 이 법안들은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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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