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계약으로 알았는데" 육군 31사단 조달 행정 '잡음'

'연장 가능' 조건 내걸어 프린터 임차 계약 체결 뒤 번복, 업체 바꿔
"연장 기대 저버려 손실" VS "법적 문제 없다"…권익위는 배상 권고

육군 한 사단급 부대가 사무기기 임차 계약 과정에서 사업자와의 약속을 번복, 미숙한 조달 행정으로 잡음에 휩싸였다.



9일 육군 제31보병사단 등에 따르면, 사단은 지난해 1월 사무기기 임차·관리 업체 A사와 1년 간 프린터 임차 용역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사단은 예산 9289만 원을 들여 A사로부터 컬러 프린터 200여 대를 1년 간 빌리기로 했다.

A사는 새로 구입한 컬러 프린터에서 근거리 무선 통신과 팩스 송·수신 기능을 제거, 사단에 납품했다. 계약 기간 중 소모품(잉크) 교체, 기기 유지·보수도 도맡았다.

계약에 첨부된 특수 조건에는 '계약 기간은 최초 계약 시점으로부터 24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임차 연장 가능성을 명문화한 것이다.

1년으로만 끝나는 임차 계약 시, 업체 측이 손실 비용을 들어 이유로 입찰마저 주저하는 탓에 이 같은 조건이 입찰 공고 단계부터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단은 '필요하다면 장기 계속 계약 조건 추가하라'는 상급부대 지침을 재확인했고, 관련 법무 질의에서도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최대 2년 연장 가능' 조건이 붙은 계약 공고를 지난 2021년 12월 국방전자조달시스템 등에 공지했다.

A사 대표는 계약 담당자로부터 '사실상 2년 단위 계약으로 봐도 된다'는 회신까지 받은 뒤 입찰에 응해 사업을 따냈다.

그러나 A사는 지난해 12월 말 담당자로부터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재정참모부의 신규 입찰 공고 방침에 따라, 계약을 끝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사단은 새 입찰 공고·유찰 등으로 A사와의 계약을 몇 달 더 유지하다, 올해 5월 최종 만료했다. 이후 또 다른 업체와 1년 단위 임차 계약(2023년 6월 1일~2024년 5월 31일)을 맺었다.

이 무렵 A사가 법원에 입찰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계약 기간이 이미 지나 A사에 빌린 프린터를 반환까지 했다. 특수 조건 만으로는 연장 보장을 받은 것은 아니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권익위는 '신뢰보호 원칙에 반한다'면서 사단에 A사 측 손해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근거로는 ▲육군본부의 장기 계속 계약 조건 삽입 지침(프린터 임차 1년 계약 시, 업체들의 입찰 참여 거부) ▲담당자의 '계약 기간 2년' 견해 표명(녹취록) ▲육군본부·사단 법무참모부의 계약 연장 가능 의견 ▲A사 측 귀책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었다.

A사 대표는 "바보가 아닌 이상, 억 대 지출을 하면서 9000만 원 남짓한 계약을 맺을 리가 있겠느냐. 계약 연장 기대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 입찰도 안 했을 것이다"며 "1년 단위 계약으로는 도저히 마진이 남을 수 없다. 사단의 아마추어 행정으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프린터 신규 기기 구입에만 1억 1800만 원, 배송·인건비 1700만 원 등 1억 3500만 원을 지출했다. 전남 곳곳에 있는 예하 여단에 기기 납품·보수 명목으로 쓴 유류비만 해도 상당하다"면서 "사단이 1년 넘게 쓰면서 프린터 기기는 중고로도 값어치가 떨어진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A사 측은 추가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31사단은 '계약 연장할 수 있다' 조건이 당사자 간 의사 합치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2022년 12월로 유효하게 끝나는 계약을 연장하면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사단 관계자는 "사업 공정성을 위해 관련 법규에 따라 계약 절차를 진행했다"며 "국민위원회의 배상 권고에 따라 이달 5일 관련 절차를 A사 측에 안내했다. 국가 배상 심의 등 추후 절차가 시작되면 결과에 따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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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