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서부지법서 첫 공판기일 진행
김광호 "보고서만으로 참사 예측 불가능"
"사후 프레임에 기초한 과도한 책임주의"
함께 기소된 상황관리관·팀장도 혐의 부인
유가족 "내 새끼 살려내" 오열…거센 항의
10·29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첫 공판기일에서 "증거 기록과 검찰 공소장은 결과론에 기초한 과도한 책임주의에 따른 주장"이라며 무죄를 호소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권성수)는 22일 오후 2시께부터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서울청 112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 당직 근무자였던 정모 전 112상황3팀장 등 3명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김 전 청장 측 변호인은 "희생자 및 유족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다. 사건은 결과 발생 후 발생한 프레임에 기초하고 있고, 증거 기록과 공소장은 결과론에 기초한 과도한 책임주의에 따른 주장"이라고 했다.
그는 "(김 전 청장) 혐의의 핵심은 대응에 과실이 있다는 것인데,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거 잘 관리됐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모일 것으로 봤다"며 "약 10만 명이 한순간에 한 지점으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3일간 그 정도 수준의 인파가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단 내용이다. 이 자체로 압사 사고가 날 거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경비기동대 파견이 없었을지라도 관광경찰대와 용산경찰서 외 다른 서 경찰도 파견됐기 때문에 경력 지원이 부족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본 건 사고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운집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여러 유해 요소가 동시에 발생해 나타나 예상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사전 준비 대응 단계에서의 부주의는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김 전 청장은 각 부서로부터 핼러윈 관련 보고서를 받아 위험 상황을 인식했고 예견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태원 인파 집중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 받았지만, 구체적이거나 특정적 지시를 하지 않고 추상적 지시에 그쳤다"며 "피고인은 사고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상황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내부 보고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핼러윈 축제 전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위험성을 충분히 예측하고도 경비기동대 배치 등 적정한 관리 대책을 수립하지 않아 지난 이태원 참사 사상 규모를 키운 혐의를 받는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당시 서울청 112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 당직근무자였던 정모 전 112상황3팀장 역시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류 총경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는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검찰의 공소사실은 논리적 모순과 허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관리관 자리엔 112신고 등을 통해 이상상황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검찰 측에선 피고인이 정착 근무를 하면 5개 권역대 무전을 동시에 청취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그런데 어떻게 업무상 과실을 주장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 전 팀장 측 변호인 역시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고 운을 뗐으나 "사건 당시 신고 접수는 매뉴얼에 따라 정상적으로 접수된 것이다. 이를 결과론적으로 접근해 잘못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서 직접 발언에 나선 고(故) 신애진씨의 어머니 김남희씨는 "저는 대한민국 경찰이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수호자라 믿고 싶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의 대응은 어땠고, 재난지역 책임자인 김 전 청장의 행태는 어땠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군중유체화'가 발생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경찰조직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도 이날 성명을 내어 "검찰은 철저히 재판에 임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유가족들은 재판 끝까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김 전 청장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가족 측이 거세게 항의하며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유가족은 "내 새끼 살려내"라며 고성을 지르고, 김 전 청장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법원 직원들에게 저지당한 유가족들은 바닥에 앉아 오열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 과정에서도 유가족들은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훔쳤다.
재판을 마친 뒤 김 전 청장은 출석 당시 상황을 의식한 듯 빠른 걸음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유가족들에게 할 말 없나' '경비기동대 요청이 없었단 입장엔 변함 없나'란 취재진 질문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1월19일 검찰수사심의원회의 공소 제기 권고를 수용해 김 전 청장, 류 총경, 정 전 팀장 등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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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