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으로 불이행" 고 문형순 서장 이제서야 국립묘지로

70여년 전 제주 4·3때 양민 200여명 구해
10일 국립제주호국원서 최고 예우 안장식
윤희근 청장 "따뜻한 인간미·당당한 리더십"


'부당함으로 불이행', 이는 70여 년 전 국가로부터 무고한 양민 학살이 자행됐던 제주4·3 당시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200여명의 목숨을 살린 고 문형순 경찰서장(1987~1966)이 공문에 적었던 말이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고 문형순 서장이 10일 최고의 예우 속에서 국립묘지에 잠들었다.

제주경찰청은 10일 오후 2시 국립제주호국원 현충관에서 고 문형순 경찰서장 안장식을 개최했다.



안장식에는 윤희근 경찰청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 유족회장,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문 서장의 거부 명령으로 목숨을 부지한 당시 생존자도 자리했다.

이날 고 문형순 서장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의 조사, 김애숙 제주도 정부부지사와 윤희근 경찰청장의 추모·추도사가 이어졌다.

윤 청장은 이날 "고 문형순 서장을 기억하고 존중하자는 경찰의 노력이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뜻 깊은 마음"이라며 "제주도민을 지켜내신 고 문형순 서장님의 따뜻한 인간미와 당당한 리더십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국립제주호국원에서의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70여년 전 고 문형순 서장의 총살 거부 명령에 의해 목숨을 부지한 제주4·3 생존자 강순주씨는 이날 지팡이를 짚고 문형순 서장 앞에서 헌화와 분향했다.

현충관에서 약 300m 떨어진 5묘역까지 영현 봉송이 진행됐다. 유가족 등 이북5도민회 측은 마지막으로 경찰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서 제주경찰청은 이날 새벽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고 문형순 서장 묘를 찾아 파병제를 지낸 후 유골을 양지공원으로 옮겨 화장했다. 이 과정에서 싸이카 4대, 순찰차 1대 등 에스코트가 이뤄졌다.

고 문형순 서장의 호국원 안장은 지난 2월29일 결정됐다. 올해 1월3일에는 6·25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2018년 경찰청은 고 문형순 서장의 업적을 기리고자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경찰청 한 켠에는 그의 흉상이 조성돼 있다.

4·3의 광풍이 불던 1949년 제주 모슬포경찰서장이었던 고 문형순 서장은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의해 끌려온 100여명의 도민들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자수를 권유, 훈방시켰다.


다음 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 이뤄졌다. 과거 좌익 혐의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잡아 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학교에 다니던 젊은 사람들이 아무련 이유없이 군경에 끌려갔다.

당시 고 문형순 서장은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들에 대한 군의 총살 명령 지시서에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거부, 295명의 목숨을 구했다.

고 문형순 서장은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수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해 1920년대 만주로 넘어가 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군사교관 등으로 활동했다. 1947년 5월 경찰에 '경위'로 입문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퇴직 직전인 1952년 지리산전투경찰대 소속으로 전쟁에도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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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취재부장 / 윤동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