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14명에 대한 현존 '미쓰비시머리티얼' 배상책임 인정
나머지 유족 5명은 징용 피해 입증·상속인 자격 탓에 기각
일제 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광업의 탄광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이 5년 7개월여 민사 소송 끝에 승소, 현존 일본기업으로부터 7억대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광주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정영호 부장판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9명이 미씨비시그룹 계열사인 미쓰비시 마테리아루(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미쓰비시는 원고(피해자) 19명 중 14명에게 각기 위자료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강제동원 피해 정도와 상속 비율 등에 따라 미쓰비시가 피해 유족에게 각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씩, 총 7억7856만9698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취지다.
다만 나머지 원고 5명에 대해서는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피고 미쓰비시 소유 광산에서 강제노무를 했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경위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또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채권에 대한 상속인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등의 이유를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인 유족들은 일제 강점기 동원 피해자들의 아들·딸·조카·손자 등이다. 이들은 피해 당사자가 받아야 할 위자료의 상속 지분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광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현지에는 27개 사업장을, 한반도 전역에 탄광 37곳과 군수공장을 운영했던 전범 기업이었다.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돼 공분을 일으킨 군함도 하시마 탄광(2015년 등재), 사도광산(올해 등재)도 미쓰비시광업의 대표 사업장이었다.
피해자들은 1940년부터 1945년 8월 사이 일본 군·경에 의해 끌려가 당시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던 일본 현지 이즈카·나마즈타·가미야마다 탄광 등지에서 일하며 고초를 겪었다.
특히 피해자 중 1명은 큰 아들을 임신한 상태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이즈카 광업소 나마즈타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낯선 타국으로 끌려가 고된 육체노동과 조선인으로서 차별을 받았지만 사측은 "월급을 모아서 나중에 주겠다"고만 하고 노임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담요 한 장으로 겨울을 났고 식사 배급이 늘 부족해 굶주려야 했다. 피해자 3명은 현지 광산 작업 중 사망했다. 가까스로 귀국한 나머지 피해자들 역시 호흡계 질환 등 각종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다가 생을 마쳤다.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심의·결정통지서 심의 조서 등을 근거로 유족과 함께 지난 2019년 4월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국제 송달 소송 서류를 일본 정부가 제때 전달하지 않는 등 문제로 소 제기 5년 7개월간 지연되다, 지난 7일 1심 선고가 났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광업은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 지배·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한 반인도적인 강제징용에 편승해 피해자들을 가혹한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불법 행위를 했다. 미쓰비시광업의 채무를 승계한 피고(미쓰비시 마테리아루)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불법행위의 경위와 정도, 피해자들의 강제징용 당시 연령이나 강제노동 기간, 노동 강도, 노동 환경과 자유 억압의 정도, 실제 발생한 피해 정도, 유사 판결에서의 손해배상액 형평 등을 모두 고려해 강제동원 피해자 1인당 위자료 액수는 4억원으로 정하고 각 유족마다 구체적인 상속 관계에 따라 손해배상 인용금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쓰비시광업 측은 당시 조선인 강제 동원·노역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줄곧 부인하고 있으나, 2016년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는 '화해' 형식으로 보상금을 지급키로 하고 강제동원 현장 중 한 곳인 나가사키 현지에는 사죄의 뜻을 담은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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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영광 / 나권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