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해자 동의 없이 조사 일부 녹화…진술 뒷받침 못해"

유흥업소 운영자들 협박해 돈 뜯은 혐의
피해진술 신빙성 의심…영상녹화로 인정
대법 "조서 날인 녹화 안돼…증거 못 쓴다"

피해자나 참고인 등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지 않거나 모든 조사과정이 촬영되지 않은 영상녹화물은 진술조서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공갈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2017~2020년 충남 서산시 일대의 유흥업소 업주 5명을 협박해 12억여원을 뜯어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서산시의 유흥업계에선 '서산식구파'로 불리던 폭력조직이 있었는데, A씨는 자신의 형인 B씨와 함께 해당 조직에 소속돼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부친이 과거 유명 폭력조직의 두목이었다는 이유로 서산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형 B씨는 유흥업소 업주들이 가입한 유흥협회모임 회장이기도 했다.

이들은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보호비 등을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으며,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욕설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협박한 혐의(공갈)가 있다.

또 형 B씨는 지난 2017~2019년 유흥업소 업자들에게 '내가 서산의 B다. 문을 닫고 싶으냐'며 소리치고 재떨이와 소주병 등을 던지거나 종업원들을 때린 혐의를 받았다.

수사기관은 A씨 등의 공갈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피해자 5명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A씨 등이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진술한 대로 조서가 작성됐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조서를 확인하지 않고 서명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그러나 1심은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하는 상황이 촬영된 영상녹화물을 근거로 이들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 동생 A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형 B씨에게 징역 4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도 1심과 마찬가지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한편, 형 B씨의 공갈 혐의는 무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동생 A씨의 공갈 혐의에 관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피해자나 참고인 등 피고인이 아닌 사람의 진술조서가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영상을 녹화하려면, 시작 전에 피해자 등에게 의사를 물어 직접 서명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또 조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녹화돼야 한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제시한 영상에는 경찰관이 녹화를 하겠다고 고지하는 장면은 있으나, 조서를 열람하던 도중 녹화가 중단돼 날인 장면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조서 열람과정이나 기명날인 등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조서가 작성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원심 판단에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영상녹화물에 의한 실질적 진정성립 증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진술조서 외에 다른 증거만으로도 동생 A씨의 공갈 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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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 / 박미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