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2013~2019년 11건 입찰서 3개사 담합 적발
시장점유율 100% 달해…경쟁 줄이고자 합의 이뤄져
들러리로 참여해 낙찰 유도…뒤로는 하도급 계약
현대로템 '맏형' 자처…텔레그램 등으로 비밀 소통
고발 조치는 없어…"조사 협조·담합 성격 등 감안"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교통공사 등이 발주한 2조4000억원 규모의 철도차량 구매 입찰에서 현대로템 등 3개사가 수년간 담합해 이득을 취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입찰 과정에서 서로 들러리를 서거나 응찰하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업체의 낙찰을 유도하고 뒤로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또한 저가 수주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 합의를 통해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등 철도운영기관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발주한 11건의 입찰에서 담합한 현대로템, 우진산전, 다원시스에 과징금 564억원을 부과한다고 13일 밝혔다.
당초 2015년 이전까지 국내 철도차량 제작 시장은 사실상 현대로템 독점 체제였다. 이후 우진산전과 다원시스 등이 완성차량 제작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들과의 경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즉, 이번 담합은 사실상 3개뿐인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가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철도차량 입찰 시장 점유율을 보면 현대로템이 50.83%로 가장 높고, 우진산전과 다원시스가 각각 25.01%, 24.16%로 뒤를 이었다. 이 기간 동안 철도차량 입찰을 수주한 업체는 이 3개사뿐이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번 제재로 기존처럼 담합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먼저 2013년 1월부터 2016년 11월에 발주한 6건의 철도차량 구매 입찰에서는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이 담합했다.
구체적으로 김포도시철도 열차운행 시스템 일괄 구매 설치(계약금, 2378억원), 서울 2호선 전동차 200량 조달 구매 요청(2096억원), 코레일공항철도 전동차 2편성 구매(265억원), 5호선(하남선) 전동차 조달 구매 계약 의뢰(483억원), 부산 1호선 전동차 40량 제작 구입(528억원), 도시철도 9호선 전동차 32량 구매(441억원) 등이다.
해당 입찰에서는 현대로템이 낙찰 받을 수 있도록 우진산전은 응찰하지 않거나 들러리로 참여했고, 그 대가로 입찰 사업 관련 일부 하도급을 받기로 3차례에 걸쳐 합의했다.
특히, 이 입찰은 단독 응찰로 인해 2회 이상 유찰되면 '재공고에 의한 수의계약'으로 체결된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사업자가 높은 협상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사업을 수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발주기관이 유효한 입찰 성립을 위해 둘 이상의 입찰 참가를 요구한 경우에는 우진산전이 현대로템이 알려준 가격으로 투찰했다.
조 국장은 "현대로템의 부품협력사로서 성격이 강했던 우진산전 역시 경쟁이 아닌 합의를 통해 안정적으로 현대로템에 전장품 등을 공급하고자 하는 유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9년에 발주된 5건의 입찰에서는 현대로템, 우진산전, 다원시스가 사전 모의를 통해 사업을 수주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를 통해 현대로템은 경인선·과천안산선·분당선·일산선 신조전동차 448량 구매(6386억원), 별내선(8호선) 전동차 구매(712억원), GTX-A노선 운행차량 구매(3452억원) 등 3건의 계약을 따냈다.
다원시스는 간선형전기동차(EMU-150) 208량 구매(3821억원) 입찰을, 우진산전은 5·7호선 신조전동차 336량 구매(3731억원) 입찰을 각각 1건씩 수주했다.
이 합의 과정에서 현대로템은 스스로를 '맏형'으로 칭하면서 담합을 주도했다고 한다. 당시 우진산전과 다원시스는 법적 분쟁으로 관계가 악화돼있었는데, 현대로템이 각 회사에 연락해가면서 강한 중재 의지를 보였고 결국 합의를 유도했다.
실제로 우진산전이 수주한 5·7호선 입찰에서 다원시스가 들러리로 참여했고, 그 대가로 우진산전은 법적 분쟁 관련 항고를 취하했다.
이들은 최초 합의 이후에도 꾸준히 소통하면서 합의를 이행했다.
다원시스가 계약을 체결한 간선형전기동차 입찰에서는 현대로템 직원이 다원시스 임원에게 '현대로템은 해당 입찰에 불참한다'는 내용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텔레그램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이번에 적발된 담합을 통한 3개사의 매출은 약 2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담합으로 수주한 사업의 계약금을 모두 더한 값이다.
조 국장은 "일회 거래량과 거래 금액의 규모가 크고, 국가기간산업과 연계돼 경제적 파급력이 큰 교통 산업 내의 경쟁제한 행위를 시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교통시설 담합 관련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 적발 시 국민의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 및 공공예산의 절감을 위해 엄중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전했다.
매출에 비해 과징금이 적고, 고발 조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국장은 "조사 과정의 협조 정도와 담합 성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발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또한 "담합으로 인해 수요처에서 손해를 봤다면 불법적인 행위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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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