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보유하던 대출채권과 예금채권 상계
1·2심 "전액 상계 가능"…대법 "압류 금액만"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의 계좌에 돈이 잘못 이체됐다면, 은행은 그 돈으로 대출금 전액을 갚도록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예금자가 세금을 내지 않는 등의 이유로 제3자에 의해 예금채권이 압류된 상황이라면, 해당 예금자에 대해 대출채권을 갖고 있는 은행은 예금채권과 상계(채무자와 채권자가 같은 종류의 채권을 갖고 있으면 서로 대등액만큼 소멸시킴)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은행은 압류된 금액 내에서만 채권을 맞바꿀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사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사는 지난 2017년 실수로 B씨의 신한은행 계좌로 1억여원을 송금했다. 착오로 송금한 것을 알게 된 A사는 곧바로 이 사실을 신한은행에 알렸으며, B씨도 돈을 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B씨는 1400만여원의 세금을 체납해 세무당국에 의해 신한은행 계좌에 대한 예금채권이 일부 압류된 상황이었다. 또 B씨는 신한은행에 2억1000만여원의 대출을 한 상태였다.
이에 신한은행은 A사가 잘못 송금한 돈 1억여원으로 B씨의 대출을 갚도록 했다.
예금자는 계좌에 돈이 들어 있으면 은행에 대해 예금채권을 보유하는데, 신한은행은 A사의 착오 송금으로 B씨 계좌에 1억여원이 생기자 그에게 예금채권이 생긴 것으로 본 셈이다.
즉, 신한은행은 B씨가 갚아야 할 돈 1억여원에 대한 채권과 B씨가 신한은행 계좌에 관해 갖고 있는 예금채권을 상계한 것이다.
그러자 잘못 송금한 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된 A사는 신한은행이 상계권을 남용했다며 소송을 냈다.
이 사건처럼 착오 송금이 이뤄진 경우 돈을 받은 사람이 반환에 동의하고 있을 때, 은행이 대출채권 등과 잘못 이체된 돈에 관한 예금차권을 상계하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해당 예금채권이 제3자에 의해 압류돼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상계가 가능하다.
B씨의 경우 세금 체납으로 세무당국에 의해 예금채권이 압류된 상태였으므로 신한은행이 상계권을 남용한 건 아니라는 게 1심과 2심의 설명이다.
다만 계좌에 잘못 들어온 돈 중 얼마까지 상계가 가능한지를 두고 1·2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나뉘었다.
1심과 2심은 A씨는 잘못 송금한 돈에 대해 B씨에게 반환청구권을 가질 뿐이라는 이유에서 신한은행이 1억여원에 대해 상계한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압류된 채권의 범위 내에서만 상계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제3자에 의해 압류된 채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상계는 착오 송금을 명분으로 채권회수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므로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착오 이체액 상당의 예금채권이 이미 수원세무서장에 의해 압류돼 신한은행이 대출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해 상계를 할 수 있더라도 피압류채권액의 범위에서만 가능하다"며, "이를 벗어나는 상계는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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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