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차관' 쪽지…野 "비상식적" vs 與 "문제 없어"

국회 보고 중 "학제개편 언급 말라" 쪽지
野 "차관 허수아비, 대통령 비서관 배후"
차관 "전달받은 의견일 뿐…내가 판단해"
與 "윗분 의사 전달…뭐가 잘못됐단 거냐"
野 "누가 봐도 비상식적…비서관 나와라"

9일 열린 교육부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사퇴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대신 참석한 교육부 차관에게 대통령실에서 '학제개편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쪽지 의견을 전달한 것이 취재진에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이날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교육부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박 부총리가 전날 사퇴함에 따라 교육부 업무보고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진행했다.



업무보고 도중 착석한 장 차관이 권성연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손에 쥔 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쪽지에는 "오늘 상임위에서 취학연령 하향 논란 관련 질문에 국교위를 통한 의견 수렴, 대국민설문조사, 학제개편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보도를 접한 교육위 야당 간사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권성연 비서관이 차관에게 학제개편을 언급하지 말라는 메모를 전달한 게 포착됐다"며 "이게 사실이면 차관은 여기 와서 허수아비 노릇하고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비서관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어떻게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일개 비서관이 차관에게 이런 메모지를 전달하느냐"며 "교육위원장이 확인해달라.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전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유기홍 교육위원장이 "차관, 이 보도 내용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장성윤 교육부 차관은 "그 의견이나 메모를 전달받았는데요. 그거는 의견일 뿐이고요. 제가 판단해서 답변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유 위원장이 "어떻든 메모를 전달받았다는 건 차관도 시인한거 같다"고 말하자, 장 차관은 "메모를 제가 직접 받은 건 아니고 의견을 우리 직원이 메모 형태로 제게 참고자료로 전달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유 위원장은 재차 "직원에게 메모를 줬겠느냐. 차관 주라고 메모를 줬겠지. 자꾸 말장난하지 마시라"고 힐난했다.

나아가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이 쪽지 사본을 제출받고 싶다"고 자료 요청을 하자, 여당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대통령실과 (장관) 보좌관 간에 소통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발하며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유 위원장은 "전례가 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도 회의 중간에 이런 쪽지가 기자들 카메라에 포착돼 그 당시 설훈 교육문화체육위원장이 제출을 요구했다"며 "이게 불법이거나 공문서는 아니지만 언론에 의해서 포착된 그 자료를 위원들이 공개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라며 장 차관에게 제출을 지시했다.


오후 회의에서 유 위원장은 제출받은 쪽지 사본을 들어보이며 "상임위에서 의원들의 질의는 국민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하는 질의이고, 정부 당국자들은 숨김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 그대로 답변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며 "그런데 대통령실 비서관이 상임위에 출석해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차관에게 '어떤 것은 답변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고 추궁했다.

이에 장 차관은 "내가 직전에 소통할 기회가 없었기에 아마 시간이 촉박해서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의 의견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전달받고 사전에 이런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메모로 전달해준 것 같다"며 "업무보고라는 게 대통령실과도 협의해서 진행한 부분이기에 답변에 대해서 의견을 전달한 것이지 답변의 책임은 내가 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여당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이 주요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현안에 대해서 본인의 의사 또는 그 윗분들의 의사를 전달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기도 하고 또 행정부의 수반이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 국회에 가서 국민들 앞에 가서 차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하는데 있어서 대통령실의 의견은 제시할 수 있다. 이게 뭐가 잘못됐다는 것이냐"고 감쌌다.

이 의원은 "만약에 거기서 의견을 제시를 하는데 그것이 부정비리와 관련이 있거나 법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하거나 요구했다면 문제가 크지만 적어도 이런 이런 현안에 대해서 이런 것은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지나친 정치공세"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의원도 장 차관을 향해 "야당 의원들에게 오해의 빌미를 줄 행동을 하지 말라"며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국회에 와서 답변할 것이면, 대통령과 의사소통 할 게 있으면 어제 하거나 오늘 회의 전에 해야지 굳이 이걸 회의 중간에 해서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있느냐"고 꾸짖었다.

반면 야당 간사인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박 부총리가 갑작스레 사퇴하고 장관이 공석인 상태에서 나온 차관에게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이 그런 지침서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은 국민과 언론이 봐도 상식적인 얘기는 분명히 아닐 것"이라며 "차관 입장에선 대통령실에서 그런 의견이 왔을 때 상당히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문제란 것"이라고 받아쳤다.

김 의원은 "권 비서관이 정말 할 말이 있으면 오늘 여야 의원님들이 동의해 주시면 이 자리에 직접 나와서 대통령실의 의견을 직접 전달하라"며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앞으로 더 할 것이면 할 것이다'라고 대통령실에서 비서관이 쪽지로 전달하지 마시고 직접 나와서 출석해서 대통령실의 의견을 직접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장 차관은 앞서 유기홍 위원장이 "(학제개편)이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다고 받아들여도 되느냐"고 묻자,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더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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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김두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