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前안보실장-이문희 前외교비서관 대화
우크라 살상 무기 지원 美 압박에 고심 역력
최근 유출된 미국 국방부(펜타곤)의 기밀문건에 한국 등 동맹국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시점이어서 외교 관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밀 문서다. 2월 말~3월 초 유출됐고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유출된 문건의 전체 범위는 불분명하지만 확인된 것만 100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자체 확인한 50여 쪽의 문서엔 국가정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거의 모든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활동이 담겼다고 밝혔다.
NYT는 지난 6일이 펜타곤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이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추가로 전했다.
문건엔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겼다.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 사이에서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NYT는 "이 기밀 문건은 미국이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 정보(signals intelligence)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미국이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비밀 유지 능력에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에게 "한국이 미국의 탄약 (지원) 요청에 응했을 때 미국이 최종 사용자(end user)가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원수들 간에 통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위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3월2일까지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이 시점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은 이 두 가지(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가 거래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이달 26일 미국 방문 일정은 지난 7일 발표됐다.
김 전 실장은 대신 "미국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것"이라며 폴란드에 155㎜ 포탄 33만 발을 수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문건엔 나와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비서관은 폴란드가 '최종 사용자'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로 탄약을 보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폴란드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NYT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한국은 외국에 판매한 무기나 무기 부품을 한국의 승인 없이 제3국에 재판매하거나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지난해 말 한국이 미국의 (탄약) 비축량을 보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포탄을 판매하기로 동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국은 최종 사용자가 미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내부적으론 윤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들이 그것(탄약)이 우크라이나로 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관련된 문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정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러시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협력할 것이란 입장이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한국을 더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 한국 외교안보 수뇌부를 염탐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일반 국민들에겐 나쁜 소식"이라며 "사람들은 '70년 간 동맹을 유지했는데 아직도 우리를 염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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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