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동전만 남아…삶의 터전 잃은 이재민들

펜션 30채도 잿더미, 이재민들 생계 막막

강원 강릉시 경포동에서 11일 발생한 산불로 김모(68)씨의 집은 폐허가 됐다. 건진 것은 200여만원, 모두 500원짜리 동전들이다.

산불 사흘째,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대피소 머무르는 이재민들은 불에 탄 집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12일 강릉시 안현동 인근 주택에서 잔불을 정리하던 소방관은 불에 탄 깡통을 발견했다. 깡통에서는 500원짜리 동전들이 쏟아졌다. 총 200여만원이었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집에는 수년 간 김씨가 모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전들만 남아 있었다.

김씨는 30년 이상 된 집에서 80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불이 난 날에는 경포동 주민센터 등에 피해 사실을 알리려 동분서주했다.

한국은행 강릉본부 관계자는 "불에 탄 지폐는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동전은 금액별로 분류해 가지고 오면 액면가 대로 교환해 주고 있다"며 "오늘까지 불에 탄 지폐와 동전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사라진 펜션, 리모델링에 1억원 이상 들였는데…


경포해변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얼마 전 수억원을 주고 펜션을 장만했다.



최대 순간풍속 초속 30m의 태풍급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퍼진 산불은 그러나 A씨의 커피숍과 펜션을 덮쳤고, A씨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됐다.

A씨는 5월 성수기와 여름 대목을 앞두고 마련한 펜션을 1억원 이상 들여 리모델링 중이었다.

A씨뿐 아니다. 근처에서 수십년 교육공무원을 하며 모은 전재산을 들여 펜션을 짓고 노후생활 준비하던 중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60대 B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들 이재민은 이번만큼은 정부가 제대로 보상, 하루 속히 재기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강릉시가 지정한 대피소에서 생활 중인 이재민들은 피해 상황을 접수하는 한편,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강릉산불피해대책위를 설립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산불로 강릉시 경포동의 주택 154곳과 숙박시설 78곳, 음식점 8곳 등 건축물 240곳이 소실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산불로 소실된 주택 154곳은 대부분 20~30년 동안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거주해 왔다. 화재보험 등에 가입하지 않아 정부 지원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농막 13동과 비닐하우스 14동, 창고 같은 농업시설 피해도 추가 확인됐다. 축구장 면적(0.714㏊)의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도 소실됐다.

1명이 숨지고 3명이 화상을 입었으며 1명이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12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323세대 649명이다.

주택 59채, 펜션 34채, 호텔 3곳, 상가 2곳, 차량 1대, 교회시설 1곳, 문화재 1곳 등 총 101개소가 전소되거나 일부가 탔다

강릉아레나 대피소에는 구호텐트 154개에 이재민 326명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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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주재기자 / 방윤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