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명 세상 등졌다…전세사기 피해자들 SOS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 부위원장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경매중지"
"극심한 생활고 견디지 못해 세상 등지는 피해자들 계속 늘어날 것"
원희룡 장관 "총력 다하겠다"…실무진 "이게 안된다. 저게 안된다. 시간 필요하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100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건축업자, 이른바 '건축왕'의 피해자들이 최근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호소하다 사망한 피해자는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무려 3명에 이른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피해가 발생한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길어지는 시간 동안 피해자들은 지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세사기로 처지 비관" 20~30대,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두달새 3명 사망

17일 오전 2시12분께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주거지에서 A(30대·여)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주거지를 찾은 지인이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당시 주거지에는 유서가 발견됐으며, 전세사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9월께 전세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계약을 맺었다. 2년 뒤인 2021년 9월께 재계약을 하게 되면서 전세보증금을 9000만원으로 올리게 됐다. A씨가 계약한 아파트는 지난해 6월 전세사기로 60세대가량이 한번에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전세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일 때 27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A씨는 전세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20대 남성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고등학교롤 졸업 한 뒤 남동산단 등에서 일을 하며 저축을 이어왔다. 이후 2019년 68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주고 오피스텔 계약을 맺었고, 2021년에는 9000만원으로 전세보증금을 올려 재계약을 했다.

하지만 해당 오피스텔은 1억8000만원이 넘는 근저당권이 설정된 상태였고, 지난해에는 경매에 넘어갔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B씨가 최우선변제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던 금액은 고작 3400만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5600만원은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B씨는 별다른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생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2만원만 보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28일에는 30대 남성 C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7000만원을 주고 건축왕 소유의 빌라를 계약했지만, 이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결국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특히 C씨는 500만원 차이로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C씨는 유서를 통해 “전세사기피해대책위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지만 더는 못 버티겠다. 자신이 없어. 뭔가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이게 계기가 되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사기피해 대책위, "경매 중단을 비롯한 실효성 있는 대책 동반돼야"



이날 A씨의 아파트에서 만난 김병렬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A씨는 새벽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며 성실하게 생활했다"고 그를 떠올렸다. 건축왕의 일당은 A씨에게 1800만원이라는 전세보증금을 한번에 증액했다고 전했다. 당시 전세값으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고, 살기 위해선 어쩔수 없이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었다고도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결국 건축왕 일당의 요구를 들어주다 A씨는 최우선변제금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경매 중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지금 중요한건 '경매 중지'이다. 다시말해 살 수 있는 기간을 늘려 달라는 것이다"며 "법을 개정한다고 정부에서 말을 해도, 개정하는 시간에 우리 집은 낙찰이 돼서 집을 떠나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며 "경매중지가 힘들다면 임차인에게 경매권 우선순위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전세피해 아파트 매물을 보고, 사람들은 알짜배기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이런 상황을 막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최초 사망자가 나왔을 때 정부 측에 요청한 게 있었다. 바로 정신상담소를 설치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알겠다는 말만 해놓고 현재 이뤄진게 없다. 대책위 관계자들도 사람이다보니 지치고 힘들다. 많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다보니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원희룡 국토부 장관 지난해 12월18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현장을 방문해 피해현황을 점검하고, 관계기관과 간담회를 열어 피해자 지원방안 및 전세사기 근절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간담회에서 원 장관은 "전세사기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홀로 고통을 감내하라고 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전세사기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해결책을 제시할 것처럼 다들 답하지만 결국에는"이게 안된다. 저게 안된다. 알아봐야 한다. 회의를 해야한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답변만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이 시간 속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피해자들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건축왕 D씨는 사기,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같은해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자신이 소유한 공동주택의 임차인 16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125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D씨는 지난 2009년부터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 타인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 빌라 등 주택을 직접 건축했다. 그는 준공 대출금 등으로 건축 비용을 충당하고, 전세보증금으로 대출이자 및 직원 급여 등을 충당하는 과정을 반복해 2700여채에 달하는 주택을 보유했다.

이어 공인중개사(보조원)들을 고용하고, 해당 공인중개사들 명의로 5~7개의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설·운영하며 자기 소유 주택에 대한 중개를 전담하도록 했다. 지난 2월 기준 D씨가 소유한 주택 중 총 690세대가 경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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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김 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