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체육관 강릉산불 이재민 .... "코골이, 이갈이에 잠꼬대"

이재민 217가구 489명 가운데 절반, 여전히 대피소 생활
"수백 명이 체육관서 잠자 신경 예민한 사람 잠 못자"
체육관 구호물품 박스가 식탁, 화장실은 종일 악취

강릉 산불 이재민들의 집 없는 서러움과 대피소 생활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취사 시설을 갖춘 독립형 숙박시설로 임시 거처를 옮긴 이재민이 전체 인원의 절반까지 늘어나면서 강릉아레나 대피소 생활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다.

20일 강릉시에 따르면 지난 11일 발생한 산불로 217가구 489명의 주민들이 집을 잃었다.



사건 당일부터 현재까지 펜션(농어촌민박)과 레지던스 호텔,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이젠(e-zen) 체험연수동 숙박시설로 임시 거처를 옮긴 이재민은 83가구 201명이다.

16가구 40명의 이재민들은 친척이나 가족, 지인 등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118가구 248명의 이재민들은 여전히 강릉아레나 임시 대피소에서 텐트형 재난 구호 셸터를 주거 공간으로 쓰고 있다.

하루 세끼 식사는 자원봉사단체가 제공하는 음식을 식판에 담아 6인용 접이식 테이블에 앉거나 셸터에 들어가 박스 위에 놓고 한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체육관 한편에 쌓아둔 구호물품 박스를 밥상 삼아 의자를 놓고 앉아 먹는다.


아침저녁으로 씻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구호단체가 마련한 이동식 샤워장이나 대피소 화장실 세면대에서 씻는다.

화장실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탓에 불쾌한 냄새가 종일 사라지지 않는다.

이재민 대다수가 급박한 상황에서 몸만 겨우 빠져나온 터라 갈아입을 옷과 속옷이 없다.

이재민들은 대한적십자사가 제공한 운동복, 아웃도어 의류를 만드는 기업이 제공한 의류,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안 입는 옷을 모아놓은 의류 더미에서 옷가지를 챙긴다.

김분자(74·여·가명)씨는 서울살이를 접고 강릉 경포동에 내려와 산 지 2년 만에 이재민 신세가 됐다.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녀 2명이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번 산불로 살던 집은 잿더미가 됐다.

그나마 보증금 없이 월세 20만원을 내고 살던 남의 집이었고 세간살이도 집주인이 쓰던 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재산피해는 크지 않다.

김씨는 LH의 서민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씨가 살던 집은 이번 산불이 아니더라도 곧 무너질 것만 같은 흙집인만큼 주거 상태가 열악했다.

김씨는 "시청에서 마련해준 펜션으로 거처를 옮기면 LH 임대 아파트로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 불편하더라도 대피소에 남겠다"고 했다.


최은영(45·여·가명)씨는 "체육관 안에서는 수백 가구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잠을 잔다. 코골이가 매우 심한 사람, 이갈이가 매우 심한 사람, 잠꼬대가 매우 심한 사람들이 있다"면서 "나처럼 잠잘 때 예민한 사람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힘들다"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강릉 산불 피해 대책 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재민들의 불편을 걱정하며 세심한 보살핌을 당부했다.

윤 원내대표는 "포항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재난의 원인은 달랐지만 이재민들을 어떻게 잘 보살필 것인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면서 "여기보다 훨씬 많은 이재민들이 합숙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불만들이 있었다. 사생활 부분도 그렇고 그런 부분들을 사전에 잘 파악해서 이재민들이 일체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잘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윤 원내대표에게 "임시 숙박시설부터 긴급히 모색하고 있다. LH하고 서로 협약이 돼 있어서 임대주택 30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연수원, 정 안 되면 레지던스 호텔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며 "이재민들이 체육관에서 한뎃잠을 자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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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주재기자 / 방윤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