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위축 우려에도 감세 기조 유지…가업승계·서민 세부담 완화

세제발전심의위 '2023 세법개정안' 의결…15개 법안 개정
4719억 세수 감소 추산…대부분 자녀장려금 조세지출 분
추경호 "어려울때 증세보다 감세 옳아…조세중립에 근접"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 세법개정안은 경제 활력과 민생 안정이라는 큰 틀에 중점을 두면서 기존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13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은 아니지만 역대급 세수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감세 기조를 이어갔다.



기업 경쟁력 강화와 투자 활성화를 위해 K-콘텐츠 제작비용 세액공제율을 대폭 늘리고, 국가전략기술에 바이오의약품 기술을 추가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가업승계를 위한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한다.

결혼과 출산 장려책으로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1억5000만원까지 세액 공제하고,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은 100만 가구 이상, 지급액 1인당 최대 100만원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56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23년 세법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세법개정안 개정대상 법률은 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 및 증여세법, 부가가치세법, 관세법 등 내국세 13개와 관세 2개 등 총 15개다. 정부는 8월11일까지 관련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후 8월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1일 이전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세법개정안은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역대급 세수 부족 상황에서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제 지원, 서민·중산층 세 부담 경감, 청년 등 미래 세대를 위한 세제 혜택 등 고루 돌아가도록 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앞서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원하고 가업승계를 통한 중소·중견기업의 영속성 유지를 돕는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생경제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서민·중산층 지원을 강화하고,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 등 구조적 문제에도 적극 대응하고자 한다"고 세법개정안 배경을 설명했다.

세법개정에는 민간·시장 중심의 경제 활력을 불어넣고자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지원 방안이 담겼다.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p) 낮추고,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등 기업들의 세부담을 크게 완화했던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다.

해외에서 K-콘텐츠 열풍을 일으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나 영화 기생충과 같이 경쟁력 있는 K-콘텐츠가 계속 제작될 수 있도록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영상콘텐츠 제작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폭 상향한다.

현행 대기업 3%, 중견기업 7%, 중소기업 10%인 세액공제율을 각각 5%, 10%, 15%로 높인다. 국내 파급력이 큰 대형 콘텐츠 제작비용은 10~15% 추가공제하는 등 최대 15~30%까지 확대한다.


국가전략기술에 바이오의약품 관련 8개 기술과 4개 시설을 포함해 하반기 연구개발(R&D) 지출과 시설투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늘린다.

신성장·원천기술 범위를 확대해 에너지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기술과 핵심광물 등 공급망 관련 필수 기술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다.

해외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기업에 대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기간을 현행 '5+2년'에서 '7+3년'으로 확대한다. 세제지원 업종요건도 완화해 국내 복귀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의 증여세 부담도 던다. 가업승계 증여세 저율과세(10%) 구간을 현행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상향하고, 연부연납 기간도 5년에서 20년으로 대폭 연장한다.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가업 상속·증여세 세제 혜택 후 5년 동안 업종변경 허용 범위도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에서 대분류로 유연성을 더한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등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세제 지원에도 초점을 맞췄다. 전세자금 마련 등 결혼비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혼신신고일 전후 2년 이내, 총 4년 간 부모로부터 증여 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현행 5000만원에 추가로 1억원을 더 공제 받을 수 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과 지급액도 확대한다. 자녀장려금 소득상한을 4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상향하고, 최대 지급액도 자녀 1인당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한다.

자녀장려금 소득기준 완화로 지급 대상은 현행 58만 가구에서 100만 가구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될 전망이다. 자녀장려금 지급액 확대로 내년부터 5300억원의 조세 지출 늘어날 것으로 파악된다.

출산·보육수당 비과세 한도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한다. 영유아 의료비에 대해서는 한도 없이 전액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산후조리비는 급여 수준에 상관없이 세액 공제 대상이 된다.

주거비 등 서민·중산층 생계비 부담을 덜기 위해 세제 지원 방안도 담겼다. 이자부담을 덜기 위해 주택담도대출 이자상환액 소득공제 한도를 상환기간이나 방식에 따라 300만~1800만원에서 600만~2000만원으로 상향한다.

주택청양종합저축 가입 시 소득공제 대상이 되는 납입한도도 연 24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늘린다.


전통시장이나 문화비 지출에 대한 신용카드 등 사용분에 대해 소득공제율을 한시적으로 10%포인트(p) 상향하고, 착한임대인 세액공제도 내년까지 1년 연장한다.

아울러 물가가 오르면 덩달아 뛰는 맥주·탁주(막걸리) 주세 과세방식도 개선해 물가연동제를 폐지하고, 필요할 때 법정세율 70~130% 범위에서 탄력세율로 조정한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총 4719억원(순액법 기준)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13조1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던 지난해 세제개편안과 비교하면 감세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내년에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과 지급액 확대로 조세 지출이 5300억원 늘어날 전망이어서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 감소는 대부분 자녀장려금 확대분에 기인한다고 기재부는 전했다.




4719억원 세 부담 감소분의 귀착을 보면 총급여 7800만원 이하인 서민·중산층이 6302억원이다. 이어 고소득자(710억원), 중소기업(425억원), 대기업(69억원) 순이다. 외국인이나 비거주자, 공익법인 등 귀착 분석이 곤란한 기타 항목에서만 2878억원의 세 부담 증가분이 발생한다.

세목별로 보면 향후 5년간 소득세는 5900억원 감소한다. 내년 7415억원 줄었다가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879억원, 636억원 늘어날 거라는 계산이다. 반면 법인세는 내년과 2025년에 각각 119억원, 1572억원 늘어 2028년까지 총 1690억원 증가할 것으로 봤다. 부가가치세는 437억원 감소 효과가 예상된다.

누적법 기준으로는 2024~2028년 5년간 세수가 3조702억원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제시했다. 누적법은 기준년도인 올해 대비 증감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 누적 총량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은 지난해와 달리 대대적인 개편보다 세수 부족 상황 등을 고려해 재정 규모나 범위를 최소화한 것이라는 평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보면 재정 규모나 범위가 최소화됐다"며 "세입 결손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감세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세제를 수단으로 적극적인 정책, 경기 활성화 정책을 내놓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세법 개정안은 기업 살리기를 통한 경제 활력에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이라며 "내년 총선에 대비해 저출산·고령화 지원에 집중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을 '세수 중립적'으로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세제 개편안'이라는 이름으로 개편 폭을 키웠던 만큼 올해는 여러 가지 여건상 대대적 개편이 힘들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추경호 부총리는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이나 중산·서민층의 투자·소비 여력을 확보해주는 것이 맞지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은 타이밍상 맞지 않다"며 "작년에 대대적인 세제개편을 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가급적 조세 중립에 근접해 세법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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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