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납북 귀환 어부 50년만에 재심서 간첩 누명 벗었다

1970년대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벌 받았던 전남 여수 납북 귀환 어부가 50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박혜선)는 7일 반공법·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자격 정지 3년을 선고받은 신평옥(84)씨의 재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신씨는 1971년 5월 전북 군산항에서 동림호(유자망 어선)를 운항해 조기 조업에 나섰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억류됐다.

신씨는 1972년 5월 10일 인천항으로 귀환한 직후 선원 5명과 함께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다.

신씨는 이후 구속 수사 과정에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강요받았다'는 이유로 신씨의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봤다. 탈출로 인한 수산업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월에 자격 정지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973년 9월 신씨의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은 "신씨가 스스로 북한에 들어간 이상 북괴 집단과 회합이 있을 것이라는 미필적 예측을 했을 것이라고 인정함이 타당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은 1973년 12월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은 유지했으나 기소된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여수에 살던 신씨는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 체포·감금을 당한 만큼 재심 사유가 있다"고 재심을 청구했고, 받아들여졌다.


신씨는 이날 최후 진술을 통해 "저는 어떤 의도도 없었고 순전히 노부모님과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 밖에는 없었다"며 "고문에 못이겨 살기 위해 했던 거짓 자백들이 저를, 우리 가족들을 빨갱이로 손가락질 받고 살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들의 회유·감시 속에 고향 사람들마저 저와 가족들을 감시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왔다"며 "징역을 살고 온 뒤 고용해줄 선주도 없었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허약해져서 고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저로 인해 시작된 우리 집의 비극은 저 뿐만 아니라 저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힘들게 했다. 저는 평생을 가슴한 곳에 이 일을 묻어두고 있었다. 이 억울함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죽었으면 자식들에게 빚을 지어주는 것 같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검사는 "과거 위법한 수사로 기본권을 침해했다.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재 검찰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재심 재판부는 "신씨에 대한 앞선 재판과 수사는 적법한 절차 없이 수집된 증거로 증거 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신씨와 그의 가족들은 법정 안팎에서 눈물을 쏟았다. "억울함을 드디어 풀었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한편 광주고법은 동림호 납북어부 9명 중 5명에 대한 재심 개시(사건 3개) 결정을 내렸고, 동림호 선장 신씨가 처음 무죄를 선고받았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수.순천 / 김권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