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무 "내달 방북"…우크라 '평화공식'은 거부 "비현실적"

"미·아시아 동맹국, 한반도 긴장 고조…우려"
군사 협력·식량 지원-푸틴 답방 논의 주목
"서방, 평화공식 고수하면 전장에서 해결"
"미, 다극세계 막고 적대·갈등 계속 부채질"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 중인 제78차 유엔총회에서 내달 북한을 방문해 북·러 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 협력, 식량 지원 문제 등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답방 문제가 논의될 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라브로프 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공식'(Peace Formula)에 대해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이 협상안을 고수할 경우 전쟁은 전장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달 평양 방문…북러 정상회담 후속 논의"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기조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북러 정상이 합의한 대로 내달 예정대로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합의한 대로 다음 달 평양에서 회담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양국 정상 회담 (결과를) 발전시키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양국 정상은 군사 분야 등 광범위한 협력을 논의했으며, 북러 정부 간 위원회를 조만간 재개하고 10월엔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의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지난 7월25일~27일 북한을 방문했다.

라브로프 장관의 방북 때 푸틴 대통령의 답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지도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후 이어진 만찬에서 푸틴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청했고, 푸틴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고 양국은 밝힌 바 있다. 다만 크렘린궁은 현재 푸틴 대통령의 방북 계획은 없다고 했었다.

아울러 라브로프 장관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적 능력이 축적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들의 군사적 히스테리가 고조되는 것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맹비난했다. 그리고는 "인도주의, 정치적 과제를 우선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을 거부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한미일, 오커스(AUKUS, 미·영국·호주), 한·일·호주·뉴질랜드 등을 통해 자신의 통제 하에 군사·정치적 소규모 동맹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주의는 '유럽-대서양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불가침'이란 교활한 슬로건 아래 군사동맹을 동반구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고도 언급했다.


◆우크라 '평화공식' 거부…"고수할 경우 전장에서 해결"



라브로프 장관은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10개항의 '평화공식'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서방은 젤렌스키의 평화공식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실현 불가능하며 모두가 이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휴전 제안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그러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분쟁은 전장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수하고 있는 평화협상 조건을 거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공식' 10개항은 ▲방사선(원전) 및 핵무기 안보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모든 포로 및 민간인 억류자 석방 ▲유엔 헌장 이행 ▲러시아 군 철수 및 적대 행위 중단 ▲정의 실현 ▲환경 파괴 방지와 환경 보호 ▲전쟁 격화 방지 ▲전쟁 종식 확인 등이다. 유엔 헌장은 주권과 영토 보전, 인권 등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조연설에서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피침략국 입장에서 영토 포기와 정치·군사적 압력이 아닌 영토·주권 회복으로 전쟁을 끝낼 기회"라면서 평화공식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고위급 공개회의에선 평화공식을 논의할 각 급별 실무그룹과 첫 세계평화정상회의 등 단계별 실천 계획을 제시했다.

영토 보전과 관련해선 "1991년 기준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 전체 주권 영토 내에서의 러시아군 완전 철수와 흑해, 아조우해, 케르치해협을 포함한 배타적경제수역(EEZ) 전체에서 실효적 통제권 완전 회복"이란 2단계 조건을 내걸었다. 1991년은 옛소련연방 해체 당시 국경선으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크름반도까지 되찾겠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19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영토를) 분할하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국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정중하게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다"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러·우 전쟁 당사자 간 평화협상은 더욱 요원해졌다.

러시아는 '러시아 헌법상 영토'를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30일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를 일방적으로 병합한 뒤 이를 헌법상 러시아연방 영토로 기재했다.

한편 유엔총회 기간 중 라브로프 장관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같은 시간에 한 자리에서 직접 대결하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지난 20일 안보리에 둘 다 참석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의 초반 연설 직후 자리를 떠났고, 라브로프 장관은 2시간여 뒤 자신의 연설 직전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연설 때 나타났다.

◆"미국 등 서방, 쇠퇴하는 국제질서의 이기적인 옹호자"

라브로프 장관은 또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서방을 "쇠퇴하는 국제질서의 이기적인 옹호자"로 묘사했다.

그는 "미국과 그 하위 서방 집단은 인류를 인위적으로 적대적인 블록으로 나누고 갈등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진정한 다극 세계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세계가 그들 중심의 규칙에 따라 경기하도록 강요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1991년 소련연방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불만을 되풀이했지만, 기조연설에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7월, 1년 만에 중단된 이른바 '흑해곡물협정'과 관련해선 러시아에 대한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한 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현실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유엔총회엔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아 라브로프 장관이 러시아 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참석 정상들에게 먼저 기조연설 순번을 부여하는 유엔 절차에 따라 이날 기조연설을 했다.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은 지난 19일 개막했으며, 24일과 25일을 건너뛰고 26일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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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