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8월 다세대·연립 전세 거래량 24.7% 감소
오피스텔 시장도 경색…아파트 거래만 활발해져
임대인 "공시가 126% 조정으로 미반환사고 급증"
"저는 사기꾼이 아닌데, 강제적으로 사기꾼으로 자연스럽게 몰리고 있어 임대인으로서 너무 답답한 마음입니다. 전세사기의 제 2의 피해자인 등록임대사업자들의 고충도 들어줬으면 합니다."(부산 연제구 소재 등록임대사업자 A씨)
전세사기의 여파로 빌라,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전세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임대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인들은 임차인 뿐만 아니라 임대인도 함께 상생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6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 다세대·연립 전세거래량은 4만7612건으로 전년동기(6만3204건) 대비 24.7% 감소했다. 오피스텔 전세거래량 역시 2만1882건에서 1만7932건으로 18.1%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10만157건에서 10만9893건으로 9.72% 증가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공시가격의 150%까지 주택 가격을 산정했지만, 올해 5월1일부터 공시가격의 140%, 주택 가격의 90%까지 보증 요건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공시지가 126%까지 전세 보증이 가능해졌다. 또 지난해 대비 전국 평균 공시가격은 약 18.6% 하락해 전세 보증 가입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때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몇 퍼센트 이상은 안 된다고 캡을 씌우면 지금처럼 전세가가 매매가를 넘거나 깡통전세가 되는 것은 막게 된다"며 "전세가를 억지로 낮추라는 게 아니다.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게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히려 비아파트 기피 현상으로 역전세난이 닥치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이는 임대인들이 늘어나자 임대인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산 연제구 소재 등록임대사업자 A씨는 "전세수요가 최악으로 치닫고 기존에 있던 전세 임차인들의 이탈이 심화되면 나도 전세사기범으로 몰리지 않을까 하루도 마음 편히 생활을 못하고 있다"며 "이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성실하게 세금납부 의무를 다 하고 있음에도 잠재적 범죄자가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서울 용산구 소재 등록임대사업자 B씨는 "솔직히 다음에 다시 오피스텔을 살 기회가 있다면 절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세금혜택을 준다고 해서 등록했는데 보증금을 올리기는커녕 더 내려야 하고 매물을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는 등 규제에 가로막혀 오히려 적자가 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임대인들은 '126%' 폐지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임대인 50여명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고, 일부 임대인들은 집단 소송을 위한 소송단도 모집 중이다.
전국임대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전세사기 예방책으로 내놓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한도축소정책은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임대인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주택가격 산정기준이 10여년전 전세가격이라 할 수 있는 공시가격의 126%로 하향 조정되면서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선량한 임대인의 파산·몰락과 기존 임차인의 피해가 가중되고, 임대차 시장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가 비아파트 공급 활성화를 위해 건설자금·보증 지원, 공유 차량 활용 조건의 주차장 확보 기준 완화, 청약에서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소형주택 범위 확대 등의 지원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임대인들은 기존 구축 비아파트도 제대로 거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공급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비아파트 시장에서 임대인의 파산이 늘어나면 임차인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는 만큼 정책의 방향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와 같이 임대시장에서 공공의 역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주택자와 법인이 임대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물론 일부 갭투자를 통한 투기적 수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투기적 수요는 아니다. 아무리 선한 정책이라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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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