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교통 법규 위반이 사고 원인, 환수 처분 전반 정당"
2심 "고의·중대한 과실 사고 단정할 수 없어, 환수 부당"
"보험료 지급 제한 사유라고 딱 잘라 판단한 것은 위법"
전동 킥보드를 몰다 신호 위반 사고를 낸 70대에게 지급한 건강 보험료를 전액 환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킥보드 운전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 없는데도 보험료 지급 제한 사유라고 딱 잘라 판단한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광주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김성주 고법수석판사)는 A(71)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소관 광주 동부지사)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징수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21년 8월 10일 낮 12시 52분께 광주 동구 서석교 사거리에서 적색 신호에 전동 킥보드를 몰다 직진하던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A씨는 종아리·허벅지 뼈가 부러져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건강보험공단은 A씨에게 공단 부담금 2997만 원(치료비 일부)을 지급했다가 환수했다. A씨의 중대한 과실(신호 위반)이 사고 원인이어서 건강보험 급여 제한 사유(건강보험법 57조)라는 판단에서다.
A씨는 건보공단에 낸 이의 신청이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가 불가피한 사유 없이 신호를 위반(교통사고처리특례법·도로교통법 위반)한 만큼, 건보공단이 보험급여를 환수 처분한 것은 정당하다고 봤다.
A씨는 "사고 당일 처음으로 전동 킥보드를 도로에서 몰아 조향·제동 장치 조작이 미흡했다. 신호를 착각해 충격 직전 상대 차량을 발견하고 멈추려 했으나 사고에 이르게 됐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 환수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고령인 A씨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다소 낮고 전동 킥보드 조작이 미숙했던 점, 적색 정지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직진해 교차로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점, 건보공단이 사고 경위와 불법성 정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험급여 전액을 징수한 점 등을 이유로 환수 처분이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에 폐쇄회로(CC)TV로 신호 위반 여부를 가려낼 수 없었고, 교차로의 신호 체계를 살핀 뒤에야 A씨의 신호 위반이 확인됐다. A씨가 적색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직진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A씨가 적극적으로 신호를 위반할 생각이었다면 빠르게 교차로를 지나가려고 했을 텐데 이런 사정을 찾아볼 수도 없다. 결국 A씨가 과속해 상대 차량을 충격하지 않았고, 상대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행정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 책임은 행정청에 있는 점, A씨 진행 방향에 정차 중인 차량은 없던 점을 종합하면, A씨가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 착오로 교차로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A씨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 사고를 발생시켰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교통 법규 준수 의무를 정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특법)과 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를 정한 국민건강보험법의 입법 취지는 다르다. 특히 교특법은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신호를 위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예정한다. 중대한 과실이라는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운전자가 신호 위반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보험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 사고 발생 경위,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사고 방지 노력 등을 두루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설령 이 사고 원인이 A씨에게 있다고 가정해도 부당 이득 징수는 건보공단의 재량 행위다. 공단은 이 사고의 경위·결과, A씨의 불법성 정도, A씨가 그동안 납부했던 건강보험료 액수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환수액을 정해야 하는데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연히 보험급여 전액을 환수 처분했다. 이는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위법하다. 공단은 환수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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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