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발전자회사 저금통에 손댄다…최대 4조 배당금 요구

한수원 14.5조 등 이익잉여금에서 배당…내주 할당액 책정
창사 이래 첫 중간배당…한전채 발행 한도 턱밑까지 차올라

사채 발행 한도가 턱밑까지 차오른 한국전력공사가 발전자회사들이 그동안 모아둔 이익잉여금을 통해 중간배당을 받는다. 발전자회사들은 한전 창사 이래 첫 중간배당을 위해 오는 14일까지 정관을 손보고, 이르면 다음주 각 사가 부담해야 할 배당금 액수를 논의할 전망이다.


▲ 지난 8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전기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13일 발전공기업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주주총회를 열고 전날 이사회에서 결정된 중간배당의 근거를 담은 정관 개정안을 의결했다.

배당액은 발전공기업들이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이익잉여금으로 집행한다. 지난 3분기 분기보고서 기준 한수원의 경우 15조607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여있다. 여기서 법정적립금인 이익준비금 6061억원을 제외한 14조4546억원이 중간배당의 재원으로 쓰인다.

발전사들도 이전부터 2조~3조원대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뒀다. 남동발전은 3조8502억원, 중부발전 3조1875억원, 동서발전 2조9567억원, 서부발전 2조7584만원, 남부발전 2조4307억원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최대 4조원의 중간배당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한수원은 2조원대, 발전 5사는 각각 3000억~4000억원씩 할당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익잉여금과 비교해 중간배당을 따져보면 액수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지만, 발전자회사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중간배당이 반기별, 분기별, 월별 등 수시로 가능하기 때문에 중간배당의 물꼬가 트인 이상 언제든 배당을 명목으로 잉여금을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발전사별로 구체적인 중간배당 금액은 이르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까지 협의를 마쳐 각 사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간다. 이후 각 사는 주주총회와 산업통상자원부 승인 절차를 통해 중간배당을 결정한다.

한전이 발전자회사에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통상 1년에 한번, 회계연도 결산 이후 3월께 배당이 이루어졌다.

한전은 올해 연말까지 자회사들로부터 배당금을 거두기 위해 각 사에 정관 개정까지 요구했다. 이에 지난 11일 한수원·동서발전을 시작으로 13일 서부·중부발전, 14일 남동·남부발전은 중간배당을 위해 정관을 변경할 것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이사회를 통과한 정관 개정안은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한전 지분이 100%인 만큼 사실상 한전 거수기다. 산업부 인가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한 이후 이번주부터는 본격적인 배당금 액수 책정을 위한 협의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이 연말까지 빠듯하게 중간배당을 챙기려는 배경에는 한전채 발행 한도가 턱밑까지 찼기 때문이다.

한전의 경우 무분별한 사채 발행을 막기 위해 한도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르면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까지 사채 발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전채 발행 한도가 차오르자 지난해 말 미봉책으로 발행 한도를 2배에서 5배까지 높일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에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인 104조6000억까지 채권을 찍어낼 수 있게 됐다.

올해 한전의 적자는 6조원대로 전망된다. 6조원대의 영업손실로 인한 한전채 발행 여력은 74조5000억원이다. 현재 한전채 발행 잔액이 79조6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빠듯하다. 최악의 경우 만기가 도래한 한전채를 갚지 못하고 자금 흐름이 막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중간배당을 통해 발전자회사로부터 4조원의 자금을 당겨오게 되면 적자가 2조원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를 94조5000억원으로 늘리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발전자회사 역시 재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돌려막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한전은 적자 해소를 위해 정산조정계수를 낮게 적용해 전력을 사들이는 비용을 줄인 바 있다. 정산조정계수가 낮게 적용되면 한전이 발전자회사에 정산해 주는 가격이 낮아져, 한전의 부담이 발전자회사에 전가된다.

발전자회사 관계자는 "배당액을 논의하기보다는 한전에서 원하는 금액을 내려보내지 않을까 싶다"며 "다들 조심스러워 눈치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발전자회사 관계자는 "한전 입장에서도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야 하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해는 된다"며 "여러 방안 중 그나마 실행 가능성이 높으니 강하게 추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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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