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문건 삭제' 공무원 3명, 1년 만에 무죄로 뒤집혀

"공무에 지장 초래 않는 행위
공용기록 손상죄 처벌 어려워"
대전고법, 1심 유죄 파기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문건을 삭제한 사건과 관련해 삭제된 문건이 공용 전자 기록으로 볼 수 없고 이러한 행위를 감사 방해로도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그 결과 전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은 정확히 1년 전 선고된 유죄 판결을 뒤집고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김병식)는 9일 오후 1시 50분 231호 법정에서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 방실침입,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산업부 공무원 A(54)·B(51)·C(46)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용전자 기록 등 손상죄는 재산권 보호 목적이 아닌 공무 보호가 목적이며 공용 전자 기록 등은 자기적·전기적, 레이저 기술 등을 이용한 기록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복사 및 복제된 기록은 내용과 활용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공용 기록을 삭제했지만 공무에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행위까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로 처벌할 경우 우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무서 내에서 담당 공무원이 참고하기 위해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 등 전자 장치에 보관해 둔 기록 자체를 공용전자기록손상죄의 객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 등을 토대로 살펴보면 C씨에게는 해당 파일을 삭제할 정당한 권한이 있었거나 인수인계한 컴퓨터 담당자로부터 묵시적으로나마 파일을 삭제할 권한을 승낙받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특히 사건 파일이 인수인계자가 사용하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고 컴퓨터 외에 문서관리시스템에 등록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다른 공무원 컴퓨터와 공용디스크에도 동일한 파일이 저장돼 있어 C씨가 삭제한 파일이 공용전자기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또 감사원이 산업부에 감사 통지서를 보낸 시점부터 산업부가 감사 대상 기관이 됐다고 봐야 하지만 통지서가 도착하기 이전에 감사관이 C씨에게 연락해 구두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 상황이며 구체적인 협조 내용과 이유를 명백히 협조 요구서에 적시했는지 등 적법한 절차로 자료 제출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이러한 자료 제출 요구는 감사 기관 대상 이외의 기관 및 사람에게 자료를 임의로 제출하도록 요구한 사항이며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감사관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 입장이다.

감사원이 산업부에 감사 통보문을 보낸 후 긴급한 사항에만 구두로 자료를 요청할 수 있음에도 감사관은 C씨에게 계속해서 구두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 상황에서 긴급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원이 산업부에 자료 제출 요청 공문을 보낸 것을 보면 긴급한 사정이 없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판사는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때에는 제출 요구서에 제출할 사람과 목적물 등을 특정 가능한 정도로 기재해야 함에도 당시 산업부에 전달된 공문에는 ‘감사 자료 제출 요구’가 아닌 ‘협조 요청’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더불어 자료 제출할 사람을 특정하지도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감사원이 산업부로부터 자료 제출을 받으려는 의사로 공문을 보냈다고는 판단하기 힘들다”며 “자료를 일부만 제출했거나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감사원법에 따른 감사방해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 과정에서 디지털 포렌식의 적법성 등 확인을 위해 감사원에 사실 조회 등을 통해 내용 확인을 시도했음에도 감사원은 내부 자료라며 제출을 거부했고, 재판부는 오히려 감사 과정에서 이뤄진 디지털 포렌식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감사원 측은 C씨가 삭제한 파일을 제1차 및 제2차 감사 과정에서 확보했다면 감사 기간을 단축하고 기간을 준수할 수 있었으며, 파일 삭제로 업무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으나 파일 삭제로 감사를 방해했다 혐의가 합리적인 의심 없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C씨가 삭제한 파일 중 주요 공공기록물은 각종 문서관리 시스템에 등록돼 산업부에서 관리할 가능성이 높고 산업부 내에 공용디스크에는 동일한 내용의 전자 기록이 존재함이 밝혀졌으며, 담당자의 ID 등을 제공받아 공용디스크 개인 폴더 등을 확인했으면 삭제한 자료를 어렵지 않게 확보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C씨가 사용했던 컴퓨터는 국가정보보안 기본지침에 따라 물리적 삭제로 폐기됐고 감사원이 디지털 포렌식 할 당시 해당 컴퓨터는 남아있지 않았으며, 감사원의 착오로 다른 컴퓨터를 디지털 포렌식한 것까지 감사 방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방실침입 혐의 역시 C씨가 자료를 삭제하고 나갈 때까지 사무실의 평온 상태가 헤쳐졌다고 볼 수 없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앞서 국장급 공무원이었던 A씨는 지난 2019년 11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업무를 담당했으며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과장급 공무원이었던 B씨와 당시 서기관이었던 C씨에게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시를 받은 C씨는 같은해 12월1일 새벽 해당 부서에 들어가 자신이 사용했던 컴퓨터에 남아있는 산업부 내부 보고 자료와 청와대 보고 자료 등 총 530개의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산업부가 관여했는지 여부를 감사하기 위해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사실을 알면서도 공모해 일부 최종본만 제출하거나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정당한 감사 행위를 방해했다"며 "공용전자 기록이 작성자 지배를 현실적으로 떠나 변경과 삭제가 불가능한 정도로 객관화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공용전자 기록 손상죄의 객체인 공용전자 기록에 해당하며 C씨가 임의로 삭제할 수 없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A씨에게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B씨와 C씨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서는 C씨가 후임자로부터 비밀번호를 받아 들어갔고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 이를 알면서도 C씨를 제지하거나 이유를 물은 적이 없던 점을 고려하면 C씨가 평온을 해치지 않았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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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취재본부장 / 유상학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