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신호등 없는 보도서 보행자 충격 후 사망
유족 "통상 사고" 주장했지만…원인은 범칙행위
법원 "경미해도 범죄는 범죄…통상적 사고 아냐"
근로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분명하다면 출퇴근길 벌어진 사고라 할지라도 통상적인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정상규)는 A씨 외 1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해 11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사건 원고는 2020년 9월 퇴근길 자전거 충돌 사고로 사망한 근로자 B씨의 자녀들이다.
공원관리 업무 담당 기간제 근로자였던 B씨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중 서울 강동구 소재 한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를 친 후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다음 날 사망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는 약 12주 치료를 요하는 치아 파절 등 상해를 입기도 했다.
문제는 유족 측에서 유족급여 등을 청구하면서 벌어졌다. A씨 등은 망인이 출퇴근 재해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공단은 B씨의 범칙행위가 원인이 된 사고를 산재보상법상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거절했다.
B씨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라는 도로교통법상 보행자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게 공단 측 판단이다.
유족은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당시 횡단보도에 정지선이 없었다며 법규 위반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설령 어겼다 하더라도 이를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도로교통법상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시 제재가 20만원 이하 벌금·구류·과료에 불과해 경미한 범칙행위라는 취지다.
그러면서 고령인 B씨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멈추기 어려웠던 만큼, 이는 퇴근길 통상적인 사고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고 원인이 B씨의 법규 위반에 있다는 점을 짚으며 유족 측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 37조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범죄행위 등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사망의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며 "여기에는 도로교통법상 범칙행위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판시했다.
이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때 운전자는 진입 여부와 관계없이 일시정지 등으로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며 "이 사건 영상에서는 망인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려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원고는 내리막길 망인이 보행자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는 평소 이곳을 다니던 망인의 주의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이밖에 정황을 살펴도 망인이 업무로 인한 통증, 치료의 시급성으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고, 사고는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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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