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두고 '삼자사기'…대법 "판매자 배상 책임 없어"

2심서 피고 손해배상 책임 2000만원 인정
대법, 파기환송…"정상적 거래행위에 해당"

굴삭기를 두고 벌어진 '삼자사기' 사건에서 판매자에게 배상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 대법 판단이 나왔다.

삼자사기는 사기꾼이 구매자이자 판매자 행세를 하며 각 거래 상대방에게 접근해 대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벌어지는데, 이때 사기꾼을 제외한 이들의 책임 여부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결론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고,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고 26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피고의 과실 방조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과실 방조의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피고 B씨는 자신의 굴삭기를 6500만원에 판매하기 위해 인터넷 중기거래 사이트에 해당 매물을 등록했고, 보이스피싱범이 B씨에게 연락해 구매희망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보이스피싱범은 원고 A씨에게 연락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굴삭기를 5400만원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고, A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보이스피싱범은 사전에 B씨에게 요구했던 금융계좌, 인감증명서, 등록증원본, 이전서류 등을 A씨에게 전달했다.

다음 날 A씨는 보이스피싱범이 보낸 B씨의 계좌로 5400만원을 송금했다. 다만 보이스피싱범은 B씨에게 '세금신고 문제가 있어 자신의 통장에 거래금액이 찍혀야 한다. 5000만원을 자신이 지정하는 계좌로 다시 보내주면 바로 6100만원(굴삭기 6500만원에 대한 잔금)을 송금하겠다'고 속였다.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은 B씨는 보이스피싱범 계좌로 5000만원을 송금했고, 이를 받은 보이스피싱범은 잠적했다. 이후 사기범행임을 인지한 원고 A씨는 '자신이 5400만원의 대금을 완납했으니 굴삭기를 가져가겠다'고 주장했고, 피고 B씨는 '매매대금을 받지 못했으니 차량을 인도할 수 없다'며 분쟁이 발생했다.

이에 A씨는 B씨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5400만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B씨가 부당하게 얻은 이득금을 400만원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적어도 보이스피싱범에게 반환된 5000만원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이익을 얻은 것이 없는 B씨로 하여금 A씨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위 사기범행의 최종적인 피해자를 A씨에서 B씨로 교체하는 결과만 될 뿐"이라며 "정의와 공평의 이념을 근거로 하는 부당이득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A씨가 송금한 5400만원 중 B씨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된 금액, 즉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400만원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항소하면서 B씨가 불법행위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보이스피싱범에제 송금된 5000만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청구했다.

A씨는 ▲보이스피싱범 전화번호로 카카오톡 친구 등록이 되지 않는 점 ▲보이스피싱범에 지시에 따라 미리 이체한도를 늘리고 5000만원을 송금한 점 등 비정상적인 거래였음에도 이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주위적 청구인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해서는 항소를 기각해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A씨가 추가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는 B씨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거래 방법이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었다"며 "B씨는 5400만원 입금 명의인과 5000만원 수취인이 다른 이유 등을 알아보려는 시도, 매매 현장에서 곧 이루어질 확인절차 등을 거치고 5000만원 송금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 매매가 피싱 범죄에 이용되는 것이라는 예견가능성이 B씨에게 있었다고 봄이 상당한데도 5000만원을 성명불상자가 지정한 계좌에 송금할 것을 수락하고 실제 실행해 A씨의 편취금이 보이스피싱범에게 귀속되도록 협조한 과실이 있다"며 "또 B씨의 이러한 과실 방조 행위와 A씨의 손해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이와 달리 판단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B씨도 성명불상 사기범의 말에 속아 이 사건 굴삭기를 매도할 목적으로 굴삭기 사진, 건설기계등록증 사진, 인감증명서 사진, 건설기계양도증명서 사진, 피고 명의 은행계좌번호 등을 전송해 준 피해자"라며 "(자료 전송은) 매매 과정에서 굴삭기의 상태나 정당한 등록 및 소유권 확인 등을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B씨는 돈 5400만원을 받은 상태였지만, 아직 성명불상 사기범에게 굴삭기의 소유권이전등록에 관한 서류를 교부하거나 인도하지는 않은 상태였다"며 "B씨가 보이스피싱범에게 5000만원을 이체한 행위가 매도인으로서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결국 이 사건에서 B씨에게 보이스피싱범의 불법행위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거나, 피고의 행위와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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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