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없는 밀실회의"…올해도 '최저임금위 공개' 요구 들끓어

4일 2차 전원회의서 회의 공개 관련 논의…노사 대립
노동계 "밀실 회의로 최저임금 둘러싼 갈등 증폭돼"
비공개 명시하는 규정 없어…심의 끝난 후 일괄공개
12대 공익위원 "비공개, 한계는 있지만 고육지책"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방식에 대해 '밀실 회의'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최임위에서도 노동계는 전면 공개를 촉구했다.

최임위는 지금까지 회의 내용, 심의 기초 자료 등을 비공개한 상태에서 심의를 진행해왔는데, '비공개'를 규정한 뚜렷한 법 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줄곧 논란이 되고 있다.



7일 최임위에 따르면 지난 4일 열린 최임위 제2차 전원회의에서 회의 정보 공개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이날 노사는 공개 여부와 범위를 두고 대립했다.

사용자위원 측은 심의 기초 자료인 '비혼 단신 노동자 실태 생계비' 조사 결과가 2차 전원회의 전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해 불쾌함을 드러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 심의의 기초 자료인 생계비 통계가 전원회의에 보고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됐다. 매우 유감스럽다"며 "기존에 합의된 원칙과 관행들을 존중하면서 최임위에 부여된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노동계는 성명을 통해 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모든 국민이 최임위의 결정에 영향을 받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라며 "비공개를 고집하는 것은 심의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몰상식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밀실에서 회의를 이어온 탓에 오히려 최저임금을 둘러싼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증폭됐다"고 강조했다.

또 사용자 측이 심의 자료 공개에 유감을 표한 것과 관련해 "생계비 통계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통계"라며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기 위해선 전 사회가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노동계가 회의 공개를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최임위 심의 과정에서도 비공개 운영 방식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양대노총 등 여러 시민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는 제2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심의 과정 전면 공개를 촉구했다. 당시 최임위 근로자위원이었던 박희은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공개요구 서한을 박준식 전 최저임금위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계가 회의 공개를 요구하는 데 핵심적인 근거는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과 최임위 운영규정에도 이 같은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최임위는 지금까지 회의 비공개를 '관행'으로 여기고 회의를 운영했다. 회의는 모두발언까지만 언론에 공개된다. 각 전원회의가 끝난 후 회의 결과 요약을 담은 보도자료는 배포되나 속기록 등 어떤 위원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은 없다. 각 회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회의록과 생계비 통계 등 심의 기초 자료는 최종 심의가 완료된 후에야 일괄적으로 최임위 홈페이지에 올라온다.

물론 비공개를 전제로 하는 조항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 제25조 1항은 '의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전원회의의 동의를 얻어 그 회의 경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외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은 의장 이외의 위원은 회의 결과를 위원회의 동의 없이 발표할 수 없다고 한다. 공개 혹은 비공개를 명시적으로 밝힌 조항은 아니지만, 1·2항 모두 '동의'를 필수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개 회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에 참여연대는 2015년 '문 닫고 회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보고서를 발간해 다른 정부위원회와 비교하며 최임위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임위와 같은 '정부위원회'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회의공개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고 일반 시민의 방청도 가능하다. 이에 참여연대는 "특정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징계를 심의하는 방심위, 전력산업체간 찬반논쟁이 매우 격렬한 원안위도 시민 방청이 가능하다"며 "최임위 회의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국회도 반응을 보였다.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은 지난 4일 최임위 심의 과정의 회의록과 결정 근거 등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심의 및 의결 과정에 대한 내용이 불투명해 개선 요구가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라고 제안 이유를 전했다.

12대 최임위 공익위원을 맡아 지난해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한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공개 운영 방식을 두고 "한계는 있지만 고육지책"이라고 정리했다.

노 위원은 "모든 내용이 공개되면 노사위원들이 자기 진영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한다는 이유로 회의가 극단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최임위의 기본 원칙인 설득과 합의가 아닌 특정 이슈에 집중해 문제 제기에만 매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사 위원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생계비 통계 등 심의 기초 자료 공개와 관련해서는 "자료가 공개되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위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데이터를 재분석하고 짜집기 할 것"이라며 "자료가 진영 논리를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의 투명성과 충실성 측면에서 공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고 바람직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의 공개 수준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임위 제3차 전원회의는 오는 11일 열린다. 이날 노·사·공 위원들은 회의 공개 여부 및 범위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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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