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3년…"수사 지연 폐해 더 커져"

수사권 조정 3년 후폭풍…수사부터 재판까지 '하세월'
경찰은 사건처리 짧아졌다지만 "오히려 더 늦어졌다"
검찰 보완 요구 늘고…"속도전 수사도 문제" 회의론도
근본 대책 시급 목소리 "제도 구체화, 수사인력 충원"

수사권 조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검찰·경찰의 역할·관계가 정립되지 않고 형사사법 절차 겉모습만 바뀌면서 혼선은 여전하다.

사실상 '옥상옥' 수사 지휘 체계 속 책임 소재만 불분명,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는 사법 절차가 오히려 더 지연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권 조정 공고화, 경찰 수사역량 확충 등 근본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6일 법조계와 경찰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시행 중인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으로 이른바 검찰과 경찰 사이에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다.

골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낮은 수준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검·경을 '협력관계'로 재규정, 검찰 수사지휘권이 폐지됐다.

'1차 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은 수사기관으로서 위상이 높아졌고, 검찰은 직접 수사 범위가 법령에 따라 국한돼 보다 기소·공소 유지에 집중하게 됐다.

다만 검찰은 최대 90일간 사건 기록을 검토할 수 있고 경찰의 사건 종결(송치·불송치)에 대해 보완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경찰이 수사권 강화에 따른 조직·인력 재편을 추진했지만 경찰 일선 수사부서에는 각종 고소·진정 사건이 몰리며 과부하가 걸렸다. 지난해 11월 수사준칙 개정에 따라 경찰 판단으로 고소·고발 사건을 반려 또는 이관할 수 없게 되면서 사건 처리 지연은 심화됐다.

이에 경찰은 수사팀 통합, 시도청 전문수사 체제 시행 등을 추진한 성과라며 지표상 개선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광주경찰 역시 '장기 사건 집중관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수사과 평균 사건 처리기간을 최장 93일(지난해 10월)에서 올해 5월 기준 50.1일까지 단축했다고 밝혔다.

특히 6개월 이상 보유한 장기사건 비율 역시 크게 줄었다. 장기 사건이 가장 많았던 지난해 10월 말 799건에서 올해 5월 466건으로 41.6% 감소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통계가 현상을 반영하지 못한 '평균의 함정에서 비롯된 착시'라는 등의 회의적 반응이 많다.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는 형사사법 절차 전반에 걸쳐 지연 문제가 오히려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경찰이 서둘러 마무리해도 검찰이 보완을 요청하면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기존 경찰 수사 사건은 일단 종결돼 새로운 사건 번호와 함께 다시 수사가 이어진다.

보완 수사 사건은 다른 수사 우선순위에 밀려 차일피일 미뤄지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사법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경찰은 '빨리 종결하라'는 지침에 따라 과중한 업무 속에서 사건을 밀어내기 급급하다. 그럴수록 수사 흠결이 발생하거나 잘못된 법리를 적용할 가능성도 높아져 검찰 보완 수사 요구가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검찰이 기계적으로 보완 수사를 요구해 실질적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 광주지검이 경찰 수사종결 사건에 보완 수사를 요구한 건수는 ▲2021년 3490건 ▲2022년 3750건 ▲2023년 3829건 등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증가세로 3년새 9.7%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도 보완 수사 요구가 10% 이상 증가했다.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올 1월 공개한 2023년 사법경찰 평가에서도 '검찰이 불송치 사건의 보완 수사를 요구했지만 1년 8개월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 고소장 접수 1년 지나도록 피의자 신문 한번 없었다' 등의 수사 지연 사례가 여실히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쟁점이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경제·지능범죄 사건은 '속도전 수사'가 능사는 아니라는 비판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온다.

한 현직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사건 처리 기간 단축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아무래도 빠르게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양 당사자 주장을 번갈아 청취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소인의 경우, 고소인 조사 이후 특별한 의견 진술 기회가 없어 불만이 있다. 억울한 일이 없도록 충분히 사안을 살피고 상반된 주장을 검증해야 한다"고 짚었다.

수사부서 소속 현직 경감은 "지휘부는 3개월, 6개월 단위로 사건 종결을 수시로 독촉한다. 그러나 오래 걸려도 정확한 실체 파악이나 추가 혐의 규명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사건도 있다"면서 "빨리빨리 사건을 끝내는 게 본질은 아니지 않느냐. 사건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인력은 모자라다. 지금처럼 사건을 꾸역꾸역 밀어내다 보면 큰 탈 난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 수사를 비롯해 형사사법 절차 전반의 지연 문제에 대한 근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어느 중견 변호사는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를 남발, 공식 폐지됐던 수사 지휘 실태는 그대로다. 경찰이 검사 수사 지휘를 받던 때에는 3개월이면 끝날 사건도 이제는 경찰·검찰 사이에서 사건이 표류하며 지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경찰은 사건 처리에 허덕이며 수사부서 기피 현상만 심해지고 있고 국민들의 수사 지연 폐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행 수사권 조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경찰이 각 사건을 충실히 수사하려면 수사 권한 독립성부터 적극 보장해야 한다. 법리에 해박하고 능률적으로 수사할 전문 인력 확충과 지원도 시급하다"며 "수사권 조정의 이상·취지에 걸맞게 기관마다 각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실무까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구체적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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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사회부 / 박광용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