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체류 증인 녹취 증거에 유죄…대법 "적법 절차 아냐"

해외 있는 증인 중계 통해 신문 절차
1심서 일부 무죄…증언에 2심서 유죄
대법 "적법한 증거조사로 볼 수 없어"

해외 체류 중인 증인이 법정 출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계장치로 신문을 진행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채택했다면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학교수인 A씨는 피해자 B씨 등에게 "네 명의로 조교 등록을 하고 계좌로 조교 장학금이 입금되면 그 돈을 현금으로 뽑아서 달라"며 허위로 신청서를 제출해 장학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일부 혐의만 인정해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피해를 입은 B씨의 경우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검찰은 B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소재지를 파악하지 못해 법정 증언이 이뤄지지 않았다. B씨가 베트남으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당국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으나 회신이 오지 않아 증인 신청을 철회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B씨와 관련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2심에서 B씨를 증인으로 다시 신청했다.

검찰은 A씨 측의 동의 하에 당시 말레이시아에 있었던 B씨와 중계장치를 통해 법정에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2심은 B씨의 진술 녹음파일과 녹취서를 증거로 채택해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법적 근거 없이 중계장치를 이용해 증인 신문 절차를 진행한 것이 적법하지 않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이 진행할 당시 개정 전 형사소송법은 중계장치를 이용한 증인 신문을 아동 청소년 피해자, 심신의 상태에 따라 피고인과 대면하기 어려운 경우 등으로 제한했다.

다만, 현재 형사소송법은 증인이 교통이 불편하거나 먼 곳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도 중계장치를 활용한 증인신문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증거조사는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 및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입각해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져야 하고, 헌법상 보장되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는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법적 편의를 증진시킨다는 이유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인터넷 화상장치를 통해서 진술을 청취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한 다음 진술의 형식적 변형에 해당하는 이 사건 증거를 검사로부터 제출받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했다"며 "이 조치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거방법에 대한 적법한 증거조사로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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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