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 23일 노사정 고령자 계속고용 토론회
'12·3 계엄사태'로 한 차례 불참했던 한국노총도 토론회 참여
노동계 "재고용 대부분 비정규직…노동자 권리 약화될 것"
경영계 "일률적 연장, 대기업에만 혜택 집중…세대갈등 촉발"
고용부 "정부, 아직 입장 안 정해…취지 맞는 제도 만들어야"
노사정이 고령자 계속고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법정 정년연장이냐 퇴직 후 재고용이냐를 두고 노사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고령자 계속고용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경사노위 산하에 있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 논의 상황을 공론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초 지난해 12월 12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경사노위 참여 잠정 중단을 선언하면서 연기됐다. 한국노총은 논의의 시급성을 고려해 이날 토론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는 일하는 모든 국민과 국가의 미래가 달린 시급한 과제"라며 "지난 2013년 60세 법정 정년 연장을 하면서 노사 갈등을 겪었고,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기 때문에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도 직접 참석해 "1964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올해만 약 80만명, 앞으로 11년 간 총 954만명이 은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능력있는 중장년들이 일하고 싶은 만큼 맘껏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개인의 삶의 질도 높이고 국가성장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김 장관은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마련해주면서도 청년의 일자리도 보장돼야 한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평생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거나 그냥 쉬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기성세대로서 너무나 죄송스럽고 이 청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이 '정년 연장의 해법: 법적 정년 연장의 효과 극대화 방법과 재고용 방안의 문제점'을, 이수영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가 '청년 고용과 상생가능한 고용연장 방안'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김 원장은 "국민연금 지급개시 연령이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늦춰지는데, 이에 맞춰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지 않으면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유일한 국가가 된다"며 "당장 65세로 정년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늦춰지는 것에 따라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은 노후 소득 공백을 최소화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저임금 부문, 불안정 노동자를 포괄해 불평등을 억제하기 위해 중소기업이나 불안정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청년 신규 채용과 고령 노동자 채용 실적과 모두 연계하는 지원제도 설계도 필요하다"고 했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직무성과급 일변도에서 교섭을 통해 마련되는 직무숙련급체계로 전환하는 논의를 촉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에 노사정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청년 고용과 상생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교수는 "경제 전체에서는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 등으로 인해 고령자 고용과 청년 고용이 대체 관계가 아니지만 대기업, 공공기관 등 좋은 일자리를 중심으로 일자리 경쟁 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며 "청년 고용 대체를 최소화하는 고용연장 방안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제 운영 사업장 중에서 36%가 재고용 제도를 실시 중인 현실을 고려할 때, 정년 연장 한 형태로만 고용을 연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재고용, 정년 폐지 등 고용 형태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 공백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괴리를 축소하기 위해 퇴직연금의 역할을 확대하고 준공적 연금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노사가 첨예하게 맞섰다.
노동계 대표로 참석한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본부장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공공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아 노후소득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법적 정년과 연금수급연령의 불일치는 결국 고령자 생활에 위험이 될 뿐 아니라,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노총에서 2023년 재고용 제도 관련 조사를 한 결과 재고용의 대부분 형태가 비정규직이었고, 퇴직 전 임금 대비 평균 21.9%가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재고용 대상 선정이나 선정 방식의 모호성, 그리고 사업주의 우월적인 재량권 하에서 일부만 선택되기 때문에 반복 갱신에 의한 고용 불안감이 굉장히 크고 노동자 권리가 크게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영계 대표로 참석한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의 법정 정년이라는 혜택이 노조가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집중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고, 청년 고용을 악화시켜서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임 본부장은 "연공급(업무 난이도나 역량이 아닌 근속연수와 나이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 임금체계에 편중된 우리 현실에서 일률적으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기업에 사회보험료, 퇴직금 같은 간접 노동비 부담까지 증가시키고 인사적체가 심화되면서 세대 간 노노갈등을 촉발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10여년 전 정년 60세 의무화와 동시에 법제화된 의무였던 임금체계 개편은 실제 현장에서 지지부진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심화시키지 않고 청년과의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기업의 경영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법정 정년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 중심으로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임 본부장은 "현재 고령자고용촉진법 상 대상이 60세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며 "정년은 60세로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퇴직 후 재고용 제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도록 기존 노동법제보다는 좀 더 유연한 내용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 후 기업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청년층을 대표해 참석한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정년 논의는 정년이 실제로 작동하는 사업장에서 일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단순히 법적으로 연장할 것인가 말 것인가만 따로 볼 게 아니라 현재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임금 체계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대표자인 임영미 고용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많은 분들이 정부가 재고용에 무게를 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그건 아니다"라며 "저희는 법정 정년연장이 된다면 임금체계 개편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가 재고용이다, 정년연장이다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지금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정년연장이든 재고용이든 취지에 맞게 제도를 만들어야 되고, 그런 방향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사정은 이날 토론회를 기점으로 고령자 계속고용제도에 대한 대국민 공론화를 하는 방식으로 논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는 노사정 모두 가장 시급한 의제로 꼽고 있다.
경사노위는 이날 토론회 외에도 지역 여론 수렴을 위해 지역노사민정협의회와 공동으로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개최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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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윤환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