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사태에 러시아 군사개입…중국에 미묘한 파장

카자흐는 중국 일대일로 정책 핵심국이자 석유 수입국
러시아 영향력 확대로 중국의 중앙아 주도권 노력 지장

카자흐스탄 혼란이 장기화하거나 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 잃을 것이 많은 중국이 현재로선 러시아의 편을 들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도 없는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서부 인접국들 사이에 군사적 혼란이 발생한 것은 최근 6개월새 두번째다.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당시 중국은 상황을 주시하면서 전망하기가 어려운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주도적 역할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1770km의 국경을 접한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혼란은 맞닿은 국경선이 76km에 불과한 아프가니스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중국 신장지방에는 카자흐 민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자칫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크다.

카자흐는 중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의 전략적 야심과 관련해서 비중이 큰 나라다. 시진핑 중국주석은 지난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당시 카자흐 수도 아스타나(현재의 누르술탄)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처럼 카자흐를 중시해온 중국이지만 카자흐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과거 중앙아시아의 맹주였던 러시아가 군대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러시아의 적극적 대응은 유라시아 지역으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꼬이게 만들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7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카자흐에서 혼란을 부추겨 '색깔혁명(color resolution)을 일으키려는 외부 세력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군 개입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도 7일 "중국은 카자흐 정부가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는 것을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러시아군 개입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자흐 사태에 대해 논의했음에도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미 존스홉킨스대학 선진국제연구소 중러 외교안보정책 전문가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카자흐 사태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분명한 협의 기제가 없는 것 같다면서 "중국이 전적으로 소외됐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할 당시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급히 안보 노력을 강화했지만 아프간에 군대를 파병한 것은 러시아였다. 반면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대화를 통한 협력에 주력했다. 러시아도 상하이협력기구의 일원이다.

카자흐 소요 사태에 대해 러시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통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섰다. 카자흐에 파견한 군대가 거의 전부 러시아군으로 구성돼 있지만 외양은 CSTO가 파견한 군대다. 중국은 CSTO의 일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중국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글거린다. 카자흐는 자원이 풍부한 중국 신장과 접경한 곳이다. 중국은 독립성향이 강한 신장지역 위구르족 이슬람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중국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카자흐에서 반정부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바짝 긴장하게 됐다고 분석가들이 말해 왔다. 카자흐 위구르족 주민들은 신장지역과 왕래가 활발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중앙아시아 지역 영향력 확대를 위해 오래전부터 경쟁해 왔다. 마오쩌둥 시절 중국은 러시아가 신장을 합병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주석이 카자흐를 일대일로 대외정책의 핵심국으로 설정하면서 상황이 역전됐었다.

키르기스탄 비슈케크의 OSCE 아카데미의 니바 야우는 중국의 의표를 찌른 러시아의 움직임이 중국에게 우려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대일로 정책이 러시아 때문에 방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게 최악의 상황은 러시아가 현 상황을 이용해 카자흐를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가입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EAEU는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맞서 결성한 경제공동체로 카자흐가 가입하면 카자흐를 경유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으로 공급되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해 러시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카자흐 생산 석유의 17%를 구매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3%인데 비해 미국은 30%다. 반면 지난 2020년 카자흐의 대중국교역 총액은 210억달러(약 25조1853억원)인데 비해 러시아는 100억달러(약 11조9930억원), 미국은 20억달러(약 2조3986억원)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외정책 목표를 폭넓게 공유하는 만큼 러시아의 카자흐 군사개입에 무척 놀랐으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분석가들도 많다. 두 나라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길 원하며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테러 방지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라자라트남국제연구대학원의 선임연구원 라파엘로 판투치는 "중국은 일정 정도 상황 안정에 필요한 지지를 보낼 것이어서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은 안정이 문제지만 안정이 달성되면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경쟁이 재연될 것"이라고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원 알레산드로 아르뒤노가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