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전 나선 주한 러 대사 "韓 제재 동참, 깊은 유감"

주한 러시아대사 28일 기자회견 개최
"한러 협력 추세 방향 바꿀 것 같다"
"美·나토, 나토 비확장 추구할 권리 부정"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의 대(對)러시아 제재 동참 결정과 관련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28일 오후 쿨릭 대사는 서울 중구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러 제재, 불법적 본질"…"세계 대부분 동참 안 해"

쿨릭 대사는 한국의 제재 동참 관련 질문에 "물론 기쁜 소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2014년 크림 사태 때 한국 정부는 대러 제재에 공식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며 "(이번에) 한국 정부가 제재에 동참하겠단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우리의 깊은 유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또 "한국 국익을 생각해보면 러시아에 우호적인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게 만드는 그런 이유를 저는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제재를 하도록 하는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한국이 지금 갖고 있는 강력한 외부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러시아가 그간 긍정적으로 양자관계를 발전시켜왔다면서 "한국이 이런 압력에 항복해서 제재에 동참하면 협력의 수준이 올라가는 이 추세가 방향을 바꿀 것 같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신북방 정책을 거론했다. 그는 "최근 한국 정부가 출범시킨 신북방 정책 덕분에 양자 관계가 잘 발전했는데, 이런 맥락에서 오늘 벌어진 사태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을 향한 비난도 이어갔다. 그는 유엔에 따르면 경제제재를 가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주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라면서, 특정 국가나 일부 국가의 협력체가 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대러 제재의 불법적인 본질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한 국가를 빨간색으로 표시한 세계지도가 인쇄된 종이를 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해당 지도에는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들, 호주, 뉴질랜드 등이 붉게 칠해져있다.

그는 "(해당 지도를 보면) 세계 대부분이 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것이 명백해 보인다"며 "이 제재에 동참하는 대부분 국가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침공 구실로 삼았다. 나토는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받으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적으로 방어한다.

남북러 3각 협력 분야로 꼽히는 가스, 철도, 전기 등 분야 사업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그는 "남북러 협력 프로젝트는 핵문제 해결, 한반도의 평화·번영 확립 이런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있다"며 "그런 생각을 하면 한국이 정말 이 모든것이 필요할까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침공 정당' 러 입장 설파…"韓 매체, 서방 시각에서만 보도"

이날 기자회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설파하려는 여론전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통역 시간이 포함되긴 했지만 질의응답에 앞선 모두발언만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쿨릭 대사는 "현재 한국 매체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완전히 서방 시각에서만 보도하고 있어 객관적으로 큰 그림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늘 기자회견이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발언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같은 구소련 국가를 나토 체제에 편입해 러시아와의 대치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주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미국의 가장 큰 우려는 결코 우크라이나의 안보가 아닌 것이 명백하다"며 "가장 큰 목표는 러시아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국과 나토는 나토의 비확장을 추구할 러시아의 권리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인을 공격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어린이를 포함한 사상자를 발생시킨 데 대해선 "(사실인지) 팩트체크를 해봐야 한다"며 "왜 어린이가 (공격 지점에) 있었는지 저도 이해가 어렵다"고 답했다.

민간인 사상 관련 쏟아지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일방적으로 조작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여론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고 민간인에 대한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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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