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단, '산재 가해자 과실만' 대신 손배청구 가능"

근로복지공단, 산재급여 지급 뒤 가해자에 손배
기존 대법원 판례는 "전액 대신 손배청구 가능"
전합 "공단, 근로자에 과실 부담 전가해선 안돼"

 산업재해에서 근로자의 과실도 있는 경우, 이미 보험급여를 지급한 근로복지공단이 가해자에게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는 가해자의 과실 부분에 제한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존에는 근로자 과실까지 포함한 전액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이는 공단이 근로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복지공단이 A사와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지난 2017년 한전으로부터 배전공사를 도급받아, 도로에 있는 전주(전력선이 설치된 기둥)를 철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B씨가 일대에 있는 광케이블을 철거하던 중 전주 일부가 그를 향해 넘어졌고, 머리를 가격당한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이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 근로복지공단이 B씨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급여 2억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A사와 한전이 급여 일부를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산재보험법 87조는 공단이 제3자의 행위로 재해 급여를 지급했다면, 그 금액 내에서 받은 사람을 대신해 제3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하급심 과정에선 B씨가 소속된 통신업체도 사전에 안전교육을 다하지 않은 등의 과실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처럼 근로자 측에게도 과실이 있는 산업재해에서 근로복지공단이 가해자 측에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기존의 경우 근로자는 자신의 과실이 아닌 가해자의 과실 부분에서 공단으로부터 받은 보험급여를 제외하고 난 다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했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지급한 급여 전액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다. 이른바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전합은 근로복지공단이 가해자의 과실 부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액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이유에서다.

초기 산업재해 사건은 근로자나 가해자의 과실을 따져 민법상 손해를 배상하는 방식이었는데, 시대가 발전하면서 사회보장성이 강해져 민법상 손해배상과는 결이 달라졌다는 게 전합의 설명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산업재해에서 근로자의 과실이 있더라도 그 역시 근로복지공단이 보장해야 할 부분이지, 그것을 포함해 가해자에게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근로자가 자신이 입은 손해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보험급여를 공제한 뒤 과실을 제외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전합의 판단은 지난해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관한 판례와도 관련이 있다.

전합은 지난해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급여를 받은 이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는 지급한 급여 중 가해자의 책임 부분에 제한된다며 판례를 바꿨다.

대법원 관계자는 "보험급여 중 재해 근로자의 과실부분 상당액은 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산재보험이 대처하는 부분을 넓혀 산업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하게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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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