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수사지휘권 등 '훈령 개정' 신속 추진…巨野 우회 작전

尹, 종부세·임대차법등 입법사안 다수 공약
172석 巨野 의회…박홍근 '강한 野' 천명 등
인수위, 장관 수사지휘권 훈령 개정 공식화
노동부 '중대재해법 필요시 하위법령 개정'
국힘, 文 '시행령정치' 비판…내로남불 일듯
"文정권 들어 법 부분을 훈령으로 맘대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소야대 정국에 거대 야당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입법보다는 시행령 개정 등 우회로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등 주요 과제를 시행령 개정을 통해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거대 야당과 협상 대신 시행령 개정으로 과제를 처리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시행령 정치'를 비판했던 국민의힘이 '내로남불' 비판에 직면하면서 정국이 경색될 것으로 우려된다. '헌법상 법률위임 원칙 훼손'이란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통합, 임대차3법·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공약을 다수 내놓은 바 있다.

입법을 하기에 의회 구도가 불리한 상황이다. 172석 단독 과반의 거대 야당과 110여석 소수야당으로 짜여있는 데다, 24일 선출돼 1년 임기를 막 시작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강한 야당' 기조를 천명한 상황에서 입법을 통한 공약 관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 직후 정국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안보 불안' 논란에 휩싸이면서 다수 여론조사의 '5년간 잘할 것' 질문에 긍정 답변이 50%대로 역대 정권에 비해 매우 낮은 점도 부담이다.

인수위 측은 이같은 이유로 시행령 등 행정부 차원의 처리가 가능한 방식으로 주요 공약사안을 조기 실현해 국정 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수사지휘권·중대재해법, 하위법령으로…부동산 완화에도 유력

인수위가 분명하게 시행령 개정 추진 구상을 밝힌 공약은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다. 장관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법률사항인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해 법무부의 인수위 업무보고까지 보류된 상황이다.

최지현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 훈령 개정 등을 통해서라도 (수사)지휘권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혀 정부가 출범하면 훈령 개정을 통해 실질적 폐지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25일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이거 박 장관이 소속된 민주당이 오래 전부터 야당일 때 수없이 강조했던 것"이라며 "야당을 설득해 법을 통과시키는 노력을 해야 될 것이고, 그 전이라도 훈령이나 다른 것으로 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윤 당선인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공약에 대해서도 하위법령 개정을 통한 신속한 추진을 구상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24일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산업 현장 우려를 전하며 필요시 하위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 제정돼 지난 1월 시행됐다.

앞서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직접 법률 조항의 모호성과 과도한 경영 책임자 처벌 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만큼 향후 정식 법률 개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무부처가 직접 하위법령 개정을 언급하면서 정부 출범을 전후해 공약의 일부 이행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는 윤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부동산 규제 완화에도 시행령 등 하위법령 개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국토교통부는 25일 인수위 업무보고를 통해 "재건축 관련 규제 등의 정상화 과정에서 단기 시장 불안이 나타나지 않도록 면밀한 이행전략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논의를 했다고 인수위는 밝혔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은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만,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기준의 완화는 국토부 행정규칙 개정으로 가능하다.

◆野, 文정부와도 '시행령 정치' 공방…내로남불론 나올듯

문재인 정부 초기 자유한국당과 벌였던 '시행령 정치' 공방이 여야를 바꿔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당은 '헌법상 법률위임 원칙 훼손' 비판을 곧바로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1년여 뒤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초기 3년간 여소야대 구도였는데, 당시 정부여당은 행정부 권한을 활용해 다수의 과업을 추진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꼼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국 사태' 한복판이었던 지난 2019년 10월,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훈령을 발표하자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유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초헌법적·초자유민주주의적 발상으로 묵과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권 들어 많은 부처가 법으로 정리할 부분을 훈령으로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고 맹공을 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이었던 2019년 11월 법무부가 검찰총장이 수사 상황을 장관에게 사전 보고하도록 하는 검찰보고사무규칙 개정을 추진하자 "법무부가 현행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던 적이 있다.

이에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인수위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관련 훈령 개정 입장에 대해 "훈령에 수사지휘권 행사의 요건을 정해놓으면 법률상 권한 행사를 훈령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훈령을 통해서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법률위임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큰 원칙을 훼손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상위법 위배 요소를 철저히 가려내 법률적 문제를 해소한다고 하더라도, 압도적 여소야대 의회에서 '시행령 정치'에는 장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거대 야당과 정치적 협상을 통해 주고받기를 해가면서 정국을 풀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입법을 하지 않고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시행령을 최대한 활용하고, 법의 예외조항을 최대한 활용해서 하는 방법이 있지만, 모든 걸 그런 식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민주당이 하겠다는 걸 몇 가지 들어주고 이 쪽도 관철시키는 식의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