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외교부가 왜 가로막나"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결정 앞둔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 제출
'한일 협의 노력 중' 의견서 내용 소개…"지연 방해에 불과" 혹평

일제 강제 노역 동원 피해자 배상 소송을 이끈 광주 시민단체가 전범 기업의 배상 이행을 위한 국내 자산 현금화(강제 집행)를 외교부가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며 규탄했다.

강제 집행 재항고 결정을 앞둔 대법원에 외교부가 '일본과 외교 협의 중이고 민관협의회 등 각계각층 의견을 듣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함께 2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부가 지난달 26일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심에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단체는 외교부 당국자의 전언을 토대로 "정부는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 한·일 양국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안을 모색하고자 일본과의 외교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 측을 비롯한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하는 등 다각적인 외교 노력에 힘쓰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대법원에 특별현금화 명령에 대한 재항고 결정을 미루어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8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진행됐던 외교부 관계자와의 면담 내용도 근거로 제시했다.

단체는 "피해자들이 일본에 강제동원을 당한 1944년 5월 이후 78년이 흘렀고, 원고 양금덕 할머니의 경우 1992년 첫 소송 참여를 시작으로 무려 30년이 흘렀다.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비로소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고 수차례 미쓰비시중공업 측에 판결 이행을 요구했으나 미쓰비시는 이를 거부했다. 교섭 요구조차 거듭 뿌리쳐왔다"고 경과를 전했다.

또 "2019년 3월 압류 신청 등 강제집행 절차를 개시한 지 3년이 훨씬 지났다.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와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치밀한 지연 전술로 집행절차는 계속 지연됐다"며 "통상 절차에 비춰 권리 실현이 눈 앞인 상황에서 외교부는 의견서를 제출, 절차를 더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소송을 지원한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측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 특허권 2건에 대해 각각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강제 매각) 명령을 내려달라고 소를 제기한 상태다.

1·2심에서 법원은 모두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 4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통상 재판 기간 등을 감안할 때 대법원 판결은 늦어도 9월 안에 내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원 피해자 중 가장 먼저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 매각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줄곧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에 우리 정부는 외교적 해법 모색을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했으나 피해자 측 반대에 부딪혔다. 시민모임 측도 민관협의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단체는 "지금 피해자들은 9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함께 판결을 받았던 원고 중 3명은 이미 고인이 됐다"며 "피해자들은 대법원 승소까지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왔다. 정부의 도움 없이 긴 법정 투쟁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외교부가 '사인 간의 민사소송으로, 재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정부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으로 피해자를 외면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후 외교부가 '민사소송규칙'을 들어 대법원에 거듭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외교부는 2차례 의견서 모두 이 규정을 근거로 제출함으로써, 피해자의 절규를 외면하고, 피고 일본 기업에 힘을 보탰다"며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지난한 권리 실현에 재를 뿌리는 행위이며 사법제도에 대한 도전이다"고 반발했다.

단체는 대법원을 향해 "외교부의 의견서에도 불구하고, 신속·적법하게 강제 집행 절차를 이행하라. 그것이 법치주의이고, 법원의 존립 근거"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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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 한지실 기자 다른기사보기